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ma Oct 20. 2022

내가 살아가는 삶

드라마를 보다 보면 많이 나오는 대사가 있다.

"내 인생, 내 마음대로 살 거야! 제발 간섭하지 마!" 

여기서 파생된 비슷한 류의 대사들을 수백 번을 들어본 듯하다. 때로는 반항처럼 보이기도 하고, 삶의 변화가 되는 터닝포인트가 되기도 하며, 무책임한 말 같기도 하면서 굉장히 책임감 있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처음부터 나의 삶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이토록 내 인생, 내 삶을 찾는 것에 열광하고, 공감하고, 갈구하는 것일까? 


물음을 던진 나 역시도 그랬다. 내 인생을 찾을 거야(아무도 앗아간 적 없는데도), 내 마음대로 해보려고(그 누가 휘두르지 않았음에도), 나 답게 살아보려고(나 다운 게 무엇인지..) 등등의 앞뒤가 맞지 않는 결심들이 수없이 많은 노트와 일기장에 기록되어 있었다. 


아무도 앗아간 적 없는 내 인생을 찾겠다는 말은 내 인생을 주의 깊게 돌보지 못하고 방치했던 나 자신을 외면하기 위해서였고, 내 마음대로 해보겠다는 말은 용기가 없었던 나를 외면하기 위해서였다. 나 다운 게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나 답게 살아보겠다고 호언장담을 한 것은 나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결국 나는 흘러가는 내 삶에 개입하지 못하고 바라만 보다 깊은 고민 없이 삶이 흘러가는 방향을 따라가고 있었고, 내 삶의 주체는 '내'가 아닌 '삶'이 되어가고 있었다. 삶이 주체가 된 나는 하루가 바쁘고, 고되고, 힘들다는 말만 늘어놓다 불평, 불만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커지는 당연한 결과를 낳았다.


'나의 삶'이어야 하는데 '삶의 나'라니 부자연스러운 상황이니 당연히 나의 내면에서는 아니라고 소리치지만, 정말 가볍게 묵살했다. 누구나 그럴것이라는 비겁한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말이다. 


'삶의 나'는 하늘을 쳐다볼 여유도 없고, 음식의 맛을 느낄 시간도 없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야 할 뿐이다. 그렇게 따라가도 괜찮았다면 이것또한 내 삶이라 생각하며 살았겠지만 괜찮을리가.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니 병이 생겼다. 그것은 마음으로든 몸으로든 어떤 형태로든 나타났고,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살기위해 '나의 삶'을 살아보기로 했다. 삶이 흐르는 방향으로 끌려가지 말고, 내가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 


내가 살아가는 삶은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산책으로 시작을 한다.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코로 향을 음미하고, 혀 끝으로 느낀다. 낮에는 구름 가득한 하늘을 쳐다보고, 밤이 되면 몇개 보이지 않는 별을 찾기 위해 칠흑같은 밤하늘을 올려다 본다. 작고 소박하지만 느긋하고, 뛰지않고 천천히 걸으며 시계를 보지 않고 시시각각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를 잠시 내려둘 수 있는 삶. 하루의 반나절도 채 안 되는 시간만 있어도 가능했던 나의 삶이 삶이라는 무게에 짓눌러져 죽어가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살아왔다. 그리고 영영 모르고 살다가 죽음 앞에서 이런 생각을 했겠지 '아, 나 행복했었나?' 


잘 사는 것보다 행복하게 사는 것을 삶의 목표로 잡은 지금, 나는 하루의 모든 순간들이 의미 있고 행복하다. '삶의 나'를 살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그래서 너무 지치고, 힘들다면 어떤 방향이든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을 시작하길 바란다. (그것이 누군가에게 해가 되지 않는 일이라면) 세상 어디에도 당신보다 소중한 당신의 삶이란 없으니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간만사 새옹지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