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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ma May 29. 2024

진실과 거짓의 잣대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평생 보고, 듣고, 겪었던 것들을 발판 삼아 자기만의 기준과 잣대를 만들어낸다. 그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했었기에 나는 경계하고, 주의하고, 무엇을 판단할 때 최대한 나에게서 떨어져 생각해 보리라 다짐했다. 심지어 그렇게 살고 있는 나 자신이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앞선 내 문장에는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 판단, 다짐, 대견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진실과 거짓의 잣대가 나만큼 공평한 사람이 있을까?'라는 자만이 기저에 깔려있는 위선적이고 너저분한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그리고, 삶은 녹록지가 않아 그런 나의 교만함을 맞닥뜨리는 계기가 생기고는 한다.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 나에게 숨기는 것이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의 기저에 깔려있는 나만의 잣대이자 강박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배신, 거짓, 이중적인 모습'은 절대적으로 있을 수 없기에 나는 상대방에게 습관적으로 확인하려 했고, 남들보다 그런 부분이 예민했기에, 쉽게 들여다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절대적이라는 말을 붙일 정도로 나는 그게 진리이고, 진실이고, 정답이라 여겼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 절대적으로 진실했던 적은 없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런 나의 사상이 완벽하게 무너지는 일들이 나를 휩쓸고 지나갔다. 


처음에는 진실과 거짓의 잣대에서 나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증명했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내 잣대와 다른 것들을 무너뜨려야 했다. 결론은 나 이외에 너는 거짓이었어야 했다. 나는 뭐가 두려웠던 걸까, 뭐가 두려워 그렇게 사랑하던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었을까? 결국 거짓을 만들고, 내가 진실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한들 내가 얻는 것은 뭐였을까? 그보다 소중한 것을 잃었는데. 그것이 거짓이었을지언정, 나는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좋았고, 위안받았던 시간들이었는데 그럼 이것도 거짓으로 볼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나를 휩쓸고 지나가는 그 기간은 괴롭고, 외롭고, 혼란스러웠다. 단 한 번도 나에게 해를 가하지 않은 사람, 어쩌면 나를 위로하기 위해 오히려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했음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온다. 


모든 것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사랑'이라는 단어만이 남았다. 이것은 연인, 가족, 친구, 불특정 다수의 타인, 이것들을 넘어선 모든 것에 해당되는 단어이고, 그나마 내가 납득할 수 있는 것이었다. 평생을 걸쳐도 정답을 찾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나는 당장 이 순간을 살아가고 싶다. 좋은 사람들과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시답잖은 이야기에도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함께 걸으며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삶. 그 삶은 나에게 어떠한 잣대도 요구하지 않기에, 나는 그렇게 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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