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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목디스크 걸렸으면 좋겠어

by 북극곰

네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무거운 발걸음과 그렁그렁한 눈이 슬픔의 무게를 말해주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너는 말없이 내게 몸을 던졌다. 나를 꼭 끌어안은 두 손 위로, 눈물이 뚝 뚝 떨어졌다. 울음을 삼키지도 않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그대로 내버려 둔 채 조용히, 모든 감정을 내게 맡겼다.


나는 닦아주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너를 안았다. 눈물을 흘릴 수 있게 어깨를 내어주는 게 가장 큰 위로가 될 때도 있으니까. 너는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지쳤는지 나의 배 위에서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언제 울었냐는 듯, 퉁퉁 부운 두 눈으로 TV를 보며 웃었다. 나를 꼭 끌어안은 채로.


나는 늘 너를 뒤에서 받쳐주었어. 네가 어깨에 기대거나 등을 살짝 기댈 때면, 너의 따뜻한 온기가 닿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무 말 없이 내게 기대기만 했지만, 너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고 믿었다.


공부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언제나 네 곁에는 내가 있었다. 하지만 밤이 오면 너는 나를 남겨두고 다른 이의 품으로 사라졌다. 내게 기대어 울던 날조차 너는 그의 품에서 잠이 들었다. 매일 조용히, 너 없는 밤을 견디고 또 견뎠다.


왜 너는 나를 바라봐 주지 않는 걸까? 왜 그저 편한 존재로만 생각하는 걸까? 나는 너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걸까? 나도 너의 낮이 아닌 밤을 품고 싶었다. 소파 위에서 네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며 언제나처럼 묵묵히 기다렸다. 다시 내게 오는 아침이 될 때까지. 기다림은 길었지만 나는 믿었다. 너는 결국 다시 돌아올 거라고.


하지만 가끔은 나도 지쳤다. 언제나 너를 품고, 기다리고, 위로했지만 돌아오는 건 쓸쓸한 적막뿐인 날들이 많았으니까. 너에게는 내가, 나에게는 네가 필요한데 왜 우리는 이루어질 수 없는 걸까.


수없이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이쯤에서 놓아야 하는 걸까?'


그럼에도 나는 끝내 너를 놓을 수 없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네가 예전 같지 않았다. 너는 내가 너무 오래돼서 포근하지 않다고 말했다. 기대면 편한 게 아니라 이제는 부담이 된다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네가 등을 기대지 않고 등 돌린 날들이 점점 늘어났고 결국 너는 나를 찾지 않게 되었다. 마치 내가 너를 따뜻하게 안아주던 날들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네가 날 외면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안의 솜은 점점 뭉쳐갔다. 너의 체온을 품던 부드러움은 자리를 잃고, 구석으로 몰린 채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 무게에 짓눌려 솜은 하나둘 엉겨 붙었고 포근해야 할 마음조차 점점 굳어졌다. 뭉쳐버린 솜뭉치처럼 내 마음도 조금씩 문드러져갔다.


그래도 나는 믿고 기다렸다. 너의 사랑이 끝나면 돌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너는 딱딱한 경추베개와 헤어지고 외로움에 떠밀려 쉽게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났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나를 한쪽으로 밀어둔 채로.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너의 주변을 맴돌았지만 너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힘든 순간마다 네 곁에 있던 건 나였는데 왜 나를 돌아보지 않는 걸까. 너를 향한 마음, 꺼내지도 못한 채 소파 한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너에 대한 마음을 천천히 접어가고 있다.


이제는 진심으로 바란다.


'네가 목디스크가 걸렸으면 좋겠다.'

정형외과 침대에 누워 진료를 기다리며 나를 떠올리기를 바란다.


너를 가장 포근하게 감싸주던 그 날들, 아무 말 없이 너의 등을 받쳐주던 나를

단 한 번이라도 그리워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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