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도 돼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

by 북극곰

사람들이 나는 항상 나에게 엄격하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갸웃하지만 돌아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잘하지 않으면, 더 노력하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누군가에게 실망감을 안겨줄 것만 같았다. 하루를 귤처럼 쪼개어 계획을 지켜야 하고, 계획을 지키지 못한 날에는 자괴감으로 괴로워했다. 표정과 말투에도 어색한 힘이 들어갔고, 긴장한 탓인지 어깨와 목은 항상 경직되어 있었다. 쉬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출근시간은 물론, 약속시간에도 좀처럼 늦는 법이 없고 피곤해도 약속한 건 지키고, 아파도 계획한 일들을 모두 마친 후 잠이 들었다. 성격은 늘 조급했고 바쁘지 않아도 시간에 쫓기듯 살아갔다.


나는 어릴 적부터 특별히 잘하는 게 없었다.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고, 꿈도 없었다. 가끔 국어, 한문 점수가 잘 나오면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스스로의 실력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이 좋은 성적을 받으면 "역시, 너다! 똑똑해." 라며 기꺼이 박수를 쳐주었다. 나에게는 인색하고 남에게 관대했다. 늘 잘하는 것은 숨기고, 부족한 부분만 더 도드라지게 바라보았다. 긍정적인 가능성보다 부정적인 면이 먼저 보였고 나에게 위로나 칭찬의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법을 몰랐다.


그래서일까. 무언가 하나 실패하면 모든 걸 망친 것처럼 느껴졌고, 남들이 나보다 잘하고 있는 걸 보면 열등감에 사로잡혔다. 그런 감정이 올라올수록 나는 더 나를 밀어붙였다. 멈춰 있으면 안 된다고, 더 잘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그래야만 좋은 사람은 아니더라도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마 전, 친구와 밥을 먹다가 친구가 말했다.


"너는 너 자신에게 너무 가혹해, 나는 네가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조금 여유를 가져도 괜찮아."

나는 대답 대신 웃었지만, 그 말이 계속 맴돌았다. 사실 이 말은 처음 듣는 게 아니었다. 집에 돌아와 양치를 하며 '내가 정말 잘하고 있다고?' 의심의 눈초리로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았다. 거울 반대편에서는 자기 불신에 지친 퀭한 두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너를 만났다. 우리는 결이 다른 사람이었다. 성격, 취미, 관심사 뭐 하나 맞는 게 없었다. 그래서 집을 지키는 똥개처럼 경계했고 이마에 '개조심'이라고 써붙이고 으르렁 짖어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내 목줄을 끊고 나를 데리고 가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덜 불안한 사람인척, 억지로 밝은 척을 하기도 했다. 초라한 모습을 들켜버릴까 봐, 네가 실망하고 돌아설까 봐 한없이 냉정하고 사납게 굴면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모순적인 마음이 있었다.


오락가락하는 미친개에게 물리기 전에 도망가는 게 보통인데, 너는 이상하리만큼 겁내지 않았다. 내가 짖는 대신 눈을 피하며 슬쩍 움츠릴 때, 그 눈빛을 오래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내 턱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내가 꾹꾹 눌러 숨기던 초조함, 괜찮은 척 내뱉던 웃음 뒤에 뭔가 있다는 걸 너는 말보다 눈으로 먼저 알아챈 사람처럼, 마치 오래전부터 나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 순간, 경계하던 꼬리가 조심스레 좌우로 흔들렸다. 항상 긴장으로 굳어 있던 내 몸은 네 앞에서 처음으로 사르르, 말랑해졌다.


너는 나의 목줄을 끊어줬다. 오랜만에 숨을 쉬는 것 같았다. 혼자 있을 때보다 너와 함께일 때 숨 쉬는 법을 더 잘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었고, 시간의 경계가 사라진 듯했다. 그제서야 나는 너무 오래 나를 불편해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였고, 그 자체로도 충분한 사람이었다. 행복은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따뜻한 말 한마디, 좋아하는 노래 한 곡, 그리고 누군가의 다정한 시선 같은 일상의 아주 작은 것들 속에서 조용히 자라고 있었다. 예전에는 하루를 쪼개 계획으로 채우지 않으면 불안했고, 하나라도 놓치면 실패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계획을 지키지 못한 날도 스스로를 다그치기보다, 그저 그런 날도 있는 거라고, 오늘은 좀 쉬어가도 괜찮다고 나에게 말해줄 수 있게 되었다. 나를 몰아붙이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조금씩, 천천히 배워가는 중이다.


친구의 말처럼, 나는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었고

너의 사랑처럼, 아무것도 바꾸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잡히지 않는 손에 모래알을 꼭 쥐듯 모든 걸 쥐고 버티지 않기로 했다. 뭐든 버텨야 한다고 다그치기보다는, 지금 내 마음이 괜찮은지를 먼저 물어보려고 한다.


나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하기로 했다.
네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 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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