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의 끝, 보름달의 시작
긴장하면 손가락 옆에 붙은 큐티클을 뜯어내는 습관이 있다. 중요한 순간마다 손톱 옆 피부를 손 끝으로 만지작거리다 딱딱해진 굳은살을 슬며시 당겨내며 마음을 진정시키지만 아릿한 시원함 뒤에는 어김없이 송골송골 피가 따라온다.
너를 처음 마주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낯선 떨림과 설렘 속에서 손끝을 만지작거리며 긴장을 누그러뜨리려 애썼다. 마음이 먼저 너에게 기울었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널 좋아해도 너는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그 생각에 조심스레 눌러 담던 감정이 스르르 새어 나오지 못하도록 손 끝은 다시 굳은살을 당겼다. 상처는 조용히 피어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얀 티셔츠에는 붉은 피가 얼룩졌고 손가락 옆에는 큐티클 대신 빨간딱지가 굳어 있었다.
집에 돌아와 손을 씻고 마디마디 굳은살이 배긴 못생기고 투박한 손을 바라본다. 시선이 손끝에 멈춘다. 일주일 전에 잘랐는데도 벌써 손톱이 손 끝을 넘어 자랐고 옆에 붙은 큐티클은 잔디밭의 잡초처럼 삐죽 솟아 있었다. 서랍 속 새로 산 손톱깎이를 꺼내 울퉁불퉁하게 자란 손톱을 정리하기로 한다. 손톱깎이가 아직 손에 익지 않아 서툴지만 곡선을 따라 조심스럽게 깎아본다.
틱, 틱.
신문지 위에 널브러진 조각들. 가늘고 연약한 초승달을 닮았다. 무심코 다시 바짝 깥은 손끝을 바라본다. 손끝에서 자라나는 조각난 형상은 마치 치유되지 않은 상처처럼 자꾸만 남아있는 것만 같다. 잘라내도 다시 돋아나는 손톱처럼, 내 마음의 상처도 사라지지 않는다. 초승달이 온전히 차오르지 못한 채 쓸쓸한 빛을 머금고 있듯, 내 손끝에 남은 흔적도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킨다. 나는 그 조각난 잔상을 바라보며 두려워했다. 내 상처가 수채화처럼 너에게 스며들까 봐, 그리고 네가 잿빛으로 물들어 버릴까 봐. 그래서 도망쳤다.
너에게서, 그리고 나에게서 도망친 마음은 조용히 마음에서 자라났다. 마치 손톱처럼. 외면하면 할수록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자라고, 결국 힘없이 부러지며 나를 아프게 만들었다. 그렇게 다시 깎아내도, 또다시 자라나는 손톱 안에는 상처와 너를 향한 애틋함이 함께 있었다.
너를 만난 뒤로 나는 더 손톱을 짧게 깎았다. 어쩌면 상처도, 너를 향한 마음더 더이상 자라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 짧게 깎은 탓에, 손톱이 도리어 살을 파고들었고, 그 상처는 더 깊고 오래 남았다. 그제야 알았다. 짝사랑도, 상처도, 치유에는 적당한 시간과 여유가 필요하다는 걸. 억지로 마음을 숨기거나, 서둘러 감정을 덮으려 하면 오히려 그 마음이 더 날카롭게 자라나 스스로를 베이게 된다는 것을.
하지만 그 시간을 견디는 일은 쉽지 않았다.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 다른 상처를 마주할까 봐 조급하게 나를 방어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너에게 마음이 들킬까 봐 더 두려웠던 걸지도 모른다. 너를 향한 감정이 네게 부담이 될까봐 다가가기보다 한 발 물러 서고 마음을 열기보다 마음의 외면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손끝에는 여전히 다듬어지지 않은 날카로운 마음의 조각들이 남아 있다. 그 조각들은 나를 찌르고, 나도 모르게 타인을 찌르며 때론 소중한 사람의 마음마저 상처 입히기도 했다.
너를 다시 만날 때도 그랬다. 마음을 숨긴 채 인사했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짧은 손톱으로 너의 마음을 할퀴어버렸다. 고의는 아니었다. 그저 또 다른 상처를 피하고 싶었던 본능적인 작은 몸부림이었을 뿐이었다.
'미안해, 그런 뜻이 아니었어.'
너의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내 손가락에 맺힌 핏물처럼 너의 마음에도 빨간딱지가 졌다. 그걸 보는 순간, 내 마음 어딘가에 멍울이 맺히고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내가 아프다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줘서는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나는 또 실수하고 말았다. 모든 걸 망쳐버렸다고 생각한 그 순간, 너는 조용히 내 손을 잡아주었다.
"괜찮아. 금방 나을 거야."
"고마워. 그리고 다시 한번 미안해. "
나는 너의 손에서 살며시 손을 빼고 내 손끝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거 알아? 내 상처는 초승달 같아. 날카롭고, 얇고, 잘 보이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베어버려.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고개를 떨구고 있는 나를 보며 너는 말했다.
"음.. 그럼.. 내가 보름달이 되어줄게. 나의 반을 떼어 너의 상처를 채워봐. 그러면 단단해져서 밤하늘을 환하게 비출 수 있을거야. 네가 아프지 않게 내 마음의 나눠줄게. 너의 모난 조각이 나를 베더라도, 다시 동그랗게 자랄 수 있도록 내가 곁에 있을게. 내가 반달이 되더라도. "
너의 말이 마음 깊은 곳에 천천히 내려앉았다. 상처 위에 조용히 내려앉는 따뜻한 거즈처럼. 나는 더 말하지 못하고, 눈물로 대답했다. 그리고 네 손을 다시 잡았다. 이번엔, 아주 조심스럽게. 꼭 감싸 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