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달지도 않게 말라버린
가을이면 감나무마다 감이 탐스럽게 열린다. 주황빛 열매들이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볕을 받으며 천천히 익어간다. 추석이 지나고 바람이 제법 서늘해지기 시작하면 감들은 저마다의 몫을 찾아간다. 딱딱한 단감이 되기도 하고, 달달한 홍시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한테 항상 인기 있는 감은 홍시. 예쁘고 탐스러운 주황빛 색깔, 보기에도 먹음직스럽고, 만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아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홍시는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달달하고 부드러운 맛을 선물한다.
단감은 또 어떠랴. 무뚝뚝하고 딱딱하고 처음에는 선뜻 손 내밀기 어려운 감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용기 내어 다가가 한 입 베어 물면 단단한 껍질 아래 숨어 있던 단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겉으로는 강해 보여도, 씹으면 씹을수록 마음깊이 스며드는 반전매력을 더한다.
그에 반해 나는 땡감이었다. 푸릇하고 단단한 외형은 어쩐지 단감을 닮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단감도 홍시도 아니다. 한입 깨물면 다시 뱉어 버리게 되는 떫고 또 떫은 감이었다. 아무리 예쁘게 포장하고 가꿔도 한입 먹고 외면받는 그런 감이었다. 나도 원하지 않는 사람이 나를 만질 때면 퉷~ 하고 떫은 표정을 지어 보이는 솔직한 감이기도 했다.
그런 탓이었을까. 나는 감나무에 끝까지 남겨진 감이 되었다. 모두가 골라간 자리, 혼자 덩그러니 매달린 감 하나. 설날의 까치마저도 외면한 감이었다. 남은 게 아닌 버려진 것 같은 감정이 들었다. 며칠 뒤 감나무에서 가지를 잘린 채 툇마루로 옮겨졌다. 익지 못한 죄로 독방에서 수감 생활을 하고, 조용히 퇴소한 후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툇마루에서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던 슬픈 감. 그게 나였다.
햇볕은 점점 강해지고 수분은 서서히 말라갔다. 툇마루에 홀로 매달린 채로 점점 쭈글쭈글해졌다. 내가 어떤 길을 가야 하는 건지, 어떤 길이 나를 부르고 있는 건지, 사람의 말 한마디가 진심인지 아닌지조차 판단하기 어렵게 되었다. 예전에는 정감 있게 느껴지던 것들도 어느덧 예민하게 깨어난 오감으로 낯설게 스며들었다.
쉰내는 나지 않았지만 쉰 살을 바라보고 있다. 이마에는 주름살이 짙어졌고 통통했던 볼살엔 팔자주름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얼굴에는 하얗게 버짐이 피고, 화장은 먹지 않아 들뜨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사람들은 나를 곶감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살이 마르고, 마음도 마르고, 거칠어진 말투에는 까칠함이 묻어났다. 남겨진 흔적들만 깊어져 가고, 다가오는 이들도 한 발 물러섰다.
몇몇 사람들은 나를 위로하며 말한다. 오랜 시간 말라가며 응축된 감정들이 단맛으로 스며있다고. 하지만 그 달콤함을 꺼내어 보여줄 사람도, 기대하는 사람도 없다. 나는 그저 말라비틀어져버린 감에 불과했다.
혼자 남았다는 외로움과 상실감에 우는 아이를 달래지도 않았다. 나를 무서워 도망가던 호랑이도 나를 무시하듯 어슬렁거리며 곁을 지나갔다. 툇마루 처마에 달린 실이 아니었다면 잡혀먹을 뻔한 적도 있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고, 나도 누구를 부르지 않았다. 우는 아이도, 호랑이도 도망가지 않는 쓸모를 잃은 곶감은 전설 속 뒷면으로 밀려나 그저 툇마루 끝에 오래도록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며 언제 떨어질지도 모른 채. 아무도 찾아주지 않아 그 자리에 남겨진 곶감.
그게 마흔 살의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