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된 마음

뚜껑은 다시 닫히지 않는다

by 북극곰

상처를 입고 마음을 닫은 나는 스스로를 유리병 속에 가두었다. 아무도 들어올 수 없도록 알루미늄 모자로 꽁꽁 덮고, 누군가 가까워질라치면 모자에 뾰족뾰족 날을 세우기도 했다. 누구를 만나도 감정이 흘러나오지 않도록, 다시는 다치지 않도록.


그런데 유심히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 있을 때조차, 나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안녕"


그 짧은 그 한마디에 병 속 갈색 액체가 출렁였다. 하지만 단단한 알루미늄 모자 덕분에 너는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유리병 속에 있었다. 숨기고 또 숨겼던 탄산같은 마음은, 안에서 날마다 긴장을 더해갔다. 마음이 요동쳐도 곁눈질로 너를 바라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너에 대한 마음은 조용히 발효되기 시작했다. 단순한 호감은 익고, 삭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으로 변해갔다. 밖으로 꺼내지도 못한 채로, 병 안에서만 깊어져갔다.


나는 스스로를 꽁꽁 잠근 맥주병이었다. 투명하지만 닿을 수 없는 병 안에서 조용히 살아갔다. 누군가 다가오는 것도, 내가 스스로 나가는 것도 무서웠다. 그런데 너를 만난 뒤로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네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보면서 병 안에 있던 나는 조심스럽게 밖을 향해 노크하기 시작했다.


"똑똑. 제가 나가도 되겠습니까?"


오랫동안 스스로를 가둔 병 속에서, 처음으로 세상과 연결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게 주먹을 쥐고 문을 두드렸다. 손끝은 미세하게 떨렸지만 그 떨림마저도 살아있다는 증거 같았다.


내 목소리를 들은 너는 그 문을 열어주었다.

그저 '안녕'이라고 건넨 한마디가 단단히 잠가두었던 내 마음을 툭 하고 열어버렸다. 마치 너에게만 열리는 자동문처럼.


"치익~"


그 순간, 나의 모자는 날아가고 숨기고 눌러 담았던 감정들은 거품이 되어 병 입구를 타고 흘러내렸다. 쏟아져 나온 마음은 멈출 줄 몰랐고 속수무책으로 흘러내렸다.


어색한 미소로 너를 바라본 순간, 너는 조용히 돌아섰다. 내 마음을 눈치챘지만, 흔들림인지 아닌지 헷갈렸던 걸까. 아니면 이미 네 마음은 내가 열릴 때쯤 식어 있었던 건 아닐까. 아니면 이 모든 게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너는 나를 지나쳐 작은 잔에 들은 투명한 액체를 집어 들었다. 소주였다. 탄산은 부담스러웠던 걸까. 가볍게 웃으며 소주를 택하는 너를 보며 씁쓸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병 입구를 타고 흘러내린 거품은 내가 애써 숨긴 눈물 같았다. 잠시 뜨겁게 넘쳤지만 금세 잦아들고 말았다. 모든 감정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잦아들었다. 병 속에는 아직 너에게 꺼내지도 못한 말이 김 빠진 맥주처럼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다.


뚜껑은 다시 닫히지 않았고, 넘친 감정은 다시 채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평생 김 빠지고 미지근한 맥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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