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처연하고도 초연하게

by 북극곰

연못은 숨 막힐 만큼 고요했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였지만 진흙 속에 잠긴 채 피어나기를 애쓰던 시간은 결국 내 줄기마저 시들게 했다. 답답했고, 가끔 잉어들이 내 줄기를 툭 치고 지나갈 때마다 살갗이 벗겨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기다리면 좋은 날이 온다고 했지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따뜻한 바람이 내게 속삭였다.


"함께 가자."


물속에서만 머물러야 한다고 믿었던 내 마음에도 처음으로 떠나고 싶다는 감정이 움트기 시작했다. 그날 밤, 몰래 짐을 챙겨 바람과 함께 길을 나섰다. 하지만 바람은 생각보다 훨씬 빨랐고, 그를 따라가는 건 내게 버거운 일이었다. 꽃을 기다렸지만 피워내지 못했고, 바람을 따라가지도 못했다. 도망치듯 달리다 돌부리에 걸려 그 자리에 힘없이 쓰러졌다. 그대로 누운 채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때가 그리울 때가 있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 난 살고 싶어서 떠났어. 이게 내 최선의 선택이야.'

꽃이 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잡초가 되었다.


아침이 밝아오고, 나는 마른 흙 위에서 다시 그 연못을 바라보았다. 물빛은 녹차라테처럼 탁했고, 바람은 유난히 차가웠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와 비슷한 가느다랗고 여린 줄기 하나가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피지도, 쓰러지지도 않은 채 비를 맞고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말없이 초연하게 견디고 있었다. 고요한 절망과 비바람, 잉어 무리의 간섭까지 묵묵히 이겨내며 그 줄기는 포기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줄기 끝에 연한 분홍색 꽃 하나가 피어났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진흙 속에서 피어났음에도 결코 더럽혀지지 않은 깨끗하고 순수한 모습이었다. 바람이 스치고, 물결이 흔들려도 그 꽃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그 모든 시간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연꽃은 고요하게, 우아하게 떠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숙연해졌다. 나와 닮았지만, 분명히 달랐다. 나는 기다림에 지쳐 떠나 잡초가 되어버린 마른 줄기에 불과했지만, 그는 고요한 절망과 고통을 껴안은 끝에 연못을 지키는 연꽃이 되어 있었다. 피하지 못한 고통을 껴안은 그의 얼굴은 처연하면서도 초연했다. 마치 모든 걸 받아들이고도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피워낸 꽃은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위로가 되고, 잠시 머물 수 있는 풍경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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