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포

저당 잡힌 시간 속에서

by 북극곰

바람에 흔들리는 낡은 간판. 퇴색한 유리창 너머로 빛바랜 시계와 먼지 쌓인 카메라가 줄지어 있었다. 문을 밀고 걸어 들어가자 오래된 나무 바닥이 기분 좋게 삐걱거린다. 돋보기안경을 코끝에 걸친 채 장부를 넘기던 사장님이 고개를 들었다. 희끗한 머리칼이 이마를 덮고, 체크남방의 단추는 꽤 팽팽해 보였다. 면도 자국이 옅게 남은 턱선과 거칠게 갈라진 손등에서, 세월을 견뎌낸 흔적이 묻어났다. 벨트 위로 살짝 흘러넘친 배는 오래된 가게의 편안한 분위기와 묘하게 어울렸다.


그가 찡긋 웃으며 눈을 가늘게 뜨더니, 습관처럼 셔츠 소매를 걷어 올렸다. 손목에 감긴 바랜 시계가 그의 지나온 세월을 조용히 말해주는 듯했다. 어색한 인사를 건네고 나니, 사장님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린 채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서 오랜 시간 사람들을 맞이해 온 이의 태도. 선반 위의 낡은 물건들처럼, 그 역시 시간 속에 자리 잡은 사람 같았다.


어색한 인사를 건네자, 그는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나는 천천히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쇼케이스 안에는 빛바랜 금반지와 오래된 시계들이 놓여 있고 작은 찾아보기표에 적힌 필체는 마치 이 물건들이 가졌던 사연을 말해주는 듯했다. 선반 위에는 골동품 카메라와 낡은 도자기, 바랜 가죽 가방이 차곡차곡 놓여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마치 주인을 기다리는 듯,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뒤편 장식장에는 오래된 은숟가락과 금빛 목걸이가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시간의 흔적이 깃들어 있는 물건들은 이 사람들의 손을 거쳐 이곳에 머물게 되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무언가를 조심스레 내려놓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과거의 영광을 맡기고 오늘의 행복을 사기도 하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저당 잡히기도 한다.


"어떻게 오셨어요?"

사장님의 목소리는 나직하고 잔잔했다. 수많은 거래를 거쳐온 그의 눈빛에는 익숙함과 미묘한 호기심이 어른거렸다.


"오늘의 행복을 맡기고 싶어요."


순간, 공기가 살짝 멈춘 듯했다. 사장님은 한쪽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돋보기안경을 코끝까지 밀어 올린 그는, 장부 위에 얹어 두었던 손을 천천히 떼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말이신가요?”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한 발 물러선 채 나를 살피는 눈빛이었다.


“행복은… 맡기는 게 아니에요.”
그는 말을 멈추고 조용히 웃었다. 한동안 시계를 내려다보던 눈길이, 먼 기억을 더듬듯 흐려졌다. 낡은 가죽줄과 긁힌 유리 너머로 흘러간 시간이 그의 눈가에 어른거렸다.

“행복은 짧아요. 그래서 잠시라도 곁에 있어야 하는 거예요.”
그는 손끝으로 장부 모서리를 천천히 쓸었다.


“당신처럼, 내일을 위해 오늘을 내려놓고 가는 사람들… 참 많이 봤어요. 처음엔 다들 금방 돌아오겠다고 하죠. ‘이것만 끝나면’, ‘조금만 더 여유가 생기면’ 하면서요. 근데 이상하게… 그렇게 말하던 사람들, 대부분은 돌아오지 않더라고요.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흐르고, 마음은 그보다 더 빨리 바뀌니까요.가끔은 다시 찾아오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그땐, 그 사람이 찾던 그 감정은 이미 빛이 바래 있어요. 다시 꺼내 쥐어도, 그 따뜻했던 온기를 느끼긴 어렵죠. 너무 오래 맡기면, 그 온기도, 그 모양도… 흐릿해져 버리거든요. 나중에 돌려받아도, 이게 정말 자신이 맡긴 게 맞는지… 헤매는 경우가 많아요. 꼭 무언가 잃어버린 것처럼요."


나는 말없이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안에는 무수히 많은 얼굴들 고요히 담겨 있었다. 그의 말이 끝났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상하게 마음 한 켠이 서늘해졌고, 그 서늘함이 천천히 가슴속 깊은 곳까지 번져왔다. 나는 그저, 내 안에 무언가 오래된 것이 조용히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다시 말없이 웃었다.
“그래도… 당신이 원한다면, 전 맡아드릴 수는 있어요.”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유리 쇼케이스 밑에서 조심스럽게 커다란 상자 하나를 꺼냈다. 손때가 묻은 손잡이, 약간 벌어진 나무 틈새, 그리고 묵직한 무게.


“오늘을 담으세요. 그리고 꼭 찾으러 오셨으면 좋겠어요.”
그의 목소리는 한층 부드러웠다.


“잊지 않을게요. 금방 찾으러 올게요.”


나는 고개를 주억이며 빨간색 테두리를 한 작은 견출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내 이름을 적었다. 시간을 맡기고, 더 나은 내일을 꿈꿨다. 행복해지면 꼭 다시 찾으러 오겠다는 다짐과 함께 전당영수증을 들고 전당포를 나왔다.


그 후로, 나는 더 열심히 살았다. 돈이 더 많아지고 노력하면 행복을 되찾을 수만 있을 거라 믿었다. 그때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낮에는 일에 매달리고, 밤에는 공부를 하며 책을 뒤적였다. 조금만 돈을 더 모으면 행복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을 거라 믿었기에.


그런데 이상했다. 노력할수록, 시간을 들일수록 그때 맡긴 행복과는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마음속 기쁨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그저 텅 빈 허기만이 남아 있었다.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은 눈밑이 퀭하고, 초라하고, 어딘가 볼품없어 보였다.


몇 달 후, 나는 조심스레 전당포 문을 다시 열었다. 기억 속보다 더 낡고, 더 고요해진 그곳. 주인은 말없이 상자 하나를 내밀었고, 손에 쥔 상자는 예상보다 가벼웠다.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자 그 안에는 텅 빈 공기 대신, 빛바래고 녹슨 행복이 고요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토록 애써 맡겼던 ‘오늘의 행복’은 시간 속에서 서서히 빛을 잃고, 그 온기마저 희미해져 있었다. 아마도 나는 그 행복을 지키지 못한 채, 착각 속에 머물렀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멍한 나를 바라보던 전당포 주인은 조용히 말했다.


“행복은 맡기는 게 아니에요. 그건 원래, 잠시라도 함께 있어야 하는 거예요.”


“그땐 왜 그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을까요?”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사장님은 잠시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 말 속에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과 아쉬움이 담겨 있는 듯했다.


“살다 보면요,”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어요.”

그리고는 살짝 웃으며 덧붙였다.


"말해도… 다들 결국 맡기더라고요. 누구나 마음 어딘가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감당이 안 될 땐, 잠시 내려놓고 싶고. 내일은 좀 더 나아질 거라 믿고 싶고."

그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손끝으로 낡은 계산기를 한번 밀었다. 먼지가 흩날렸다.

"그 마음을… 내가 막을 순 없잖아요. 다만, 언젠가 돌아왔을 때 너무 늦지 않았기를, 그 온기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죠."


나는 상자를 닫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행복을 찾으러 왔지만, 행복은 이미 어딘가로 떠나버린 상태였다. 집으로 돌앙오는 길, 나는 천천히 깨달았다. ‘언젠가’를 위해 너무 많은 오늘을 저당 잡혔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언젠가’는 결국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는, 약속 없는 시간임을.


그리고, 행복을 되찾기 위해 애쓴 시간조차 결국 그때의 행복과 점점 멀어지게 만들고 말았다. 잃지 않으려 애썼던 마음들이 오히려 나를 행복에서 멀어지게 밀어내고 있었다. 나는 깨달았다. 행복은 맡아 두었다가 나중에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마다 온전히 느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불안한 내일을 걱정하기보다, 불완전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의 오늘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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