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치실

상처를 닦아내고 다시 웃다

by 북극곰

처음엔 모두 깨끗하고 단단한 치아를 가지고 태어난다. 빛나는 치열,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 매끄러운 표면.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세상의 다양한 경험이 치아 사이에 끼어들게 된다. 실수, 좌절, 배신, 그리고 뜻하지 않은 여러 충격들. 마치 식사 후 남은 음식 찌꺼기처럼, 그 감정들은 자리를 잡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냥 두면 치아가 상하고 결국 더 깊은 충치로 번질 수도 있다.


한 번은 친구들과의 점심 자리에서였다. 한껏 웃고 떠들던 그날, 식사 후 거울을 보니 앞니에 선명한 고춧가루 하나가 낀 채 내가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다정한 농담을 나누고 있었던 내 얼굴이 갑자기 우스워졌다. 누군가 말해주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그 작은 고춧가루 하나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는 것이 더 서글펐다.


그날 이후, 나는 습관처럼 웃기 전 치아부터 확인하게 되었다. 그 작은 흔적 하나가 남긴 민망함이, 오래도록 남았기 때문이다. 마음속에도 종종 그런 게 낀다. 작고 별것 아닌 줄 알았던 감정들이 말하지 못한 불편함들이 어딘가에 끼어서 마음을 텁텁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나는 늘 그런 것들을 가글로 넘겼다. 입안 가득 퍼지는 시원한 향, 일시적인 개운함. 하지만 결국, 가글은 일시적일 뿐 치아 사이 깊숙이 끼인 찌꺼기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상쾌한 향기로 불쾌감은 줄어들었지만 텁텁한 잔여감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아무리 입안을 헹궈도, 다음 날 아침엔 입 냄새가 다시 찾아오곤 했다.


표면만 정리한다고 해서, 마음까지 정리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실은 귀찮았다. 양치도 했고, 가글도 했는데 굳이 또 하나를 더 해야 하나 싶었다. 치아가 조금 욱신거리고 조금 아프기는 했지만 감싸 쥔 불편함들을 대충 씻어내며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 잇몸이 붓고 피가 나기 시작했다. 칫솔만 닿아도 은근한 통증이 올라왔고 이 사이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치과를 찾았다. 의사가 엑스레이 사진을 보더니 말했다.


“스케일링부터 하시죠. 치석이 꽤 많이 쌓였네요.”


녹색 천이 내 눈을 덮고 나는 눈을 감았다. 윙~ 낮고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치석제거가 시작되었다. 입 안에서는 딱딱한 도구 소리와 함께, 그동안 미뤄두었던 시간들이 하나씩 깎여나갔다. 차갑고 낯선 감각이었다. 기구가 앞니를 건드리는 순간 시린 통증에 소리를 내고 왼손을 들었다. 아주 얇고 작게 닿은 고통이었지만 오히려 더 아려왔다. 그 치석 속에는 내가 외면하고 미뤄온 것들이 오랫동안 쌓여 있었다. 스케일링이 끝난 뒤, 의사는 내 치아를 이리 둘러보고 저리 둘러보더니 나직하게 말했다.


“여기가 아프신 것 맞죠? 발치하고 임플란트를 하셔야 합니다.”


그 말은 단순한 치료가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상실의 선언이었다. 아프고 부러진 치아라도 내 것이었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잃게 되었다. 제때 들여다보지 않은 무관심이, 나를 얼마나 망가뜨릴 수 있는지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국소마취를 하고 발치를 했다. 의료용 펜치로 치아를 뽑고 상처 부위는 몇 땀 꿰맸다.처방받은 항생제를 약국에서 받는 동안 매대에 있는 치실이 눈에 들어왔다. 그날 나는 치실을 샀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나는 하루에 한 번 치아 사이에 조심스럽게 실을 넣었다. 작고 보잘것없는 가느다란 천천히 실을 넣어 쓸어내리면, 어디가 욱신거리고 무엇이 아직 남아 있는지 느껴진다. 순간적으로 사라지지 않는 감정들처럼, 치아 사이에 남아 있던 찌꺼기들도 그렇게 조금씩 사라졌다.


그동안 가글의 향기로 덮어두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겉치레로 덮어두지 않기로 했다. 진짜 마음은 그렇게 쉽게 씻겨 내려가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차분히 마주하며 조금씩 정리하기로 했다.


살다 보면 누구나 마음속에 찌꺼기를 남긴다. 우리는 가끔 그걸 향기로운 말, 멀쩡한 표정, 웃음으로 덮는다.
하지만 그건 가글일 뿐이다. 진짜 정리는 치실처럼 깊이 들여다보고 섬세히 닦아내는 일이다. 앞니에 낀 고춧가루처럼 사소한 민망함이, 그리고 방치한 충치처럼 돌이킬 수 없는 후회가 우리 마음 안에 자리하지 않도록.

오늘도 치실을 들고 삶을 닦아내기로 했다.


조금 귀찮고 익숙하지 않은 과정이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다. 단순히 치아를 닦아내는 일이 아니라, 마음속에 남아 있는 찌꺼기들도 함께 정리하는 일이라는 걸.


오늘도 치실을 들고 삶을 다듬는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보이지 않는 곳에는 늘 무언가가 남아 있다.

지나치고 덮어두었던 것들, 미뤄온 감정들.

하나씩 살피고 닦아내며, 더 이상 쌓이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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