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나는 동네에 있던 종합학원을 다녔었다. 학원이 끝나면 친구들과 어울려 놀며 즐거웠던 시간을 보냈었다. 학원에는 담임선생님이 계셨었는데 어느 날,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아무런 인사도 없이 학원을 그만두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원장선생님의 압박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돌았고 어린 마음에도 이해되지 않는 분노가 치밀었다. 우리를 다정히 대해주셨던 그분이 갑작스럽게 사라졌다는 상심이 정말 너무 컸다.
새로 오신 선생님이 우리 반을 맡으셨지만 같은 반 친구들은 여전히 우리를 가르치셨던 ‘현숙’ 선생님을 그리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반장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얘들아, 우리 현숙 선생님 보고 싶지 않니? 우리 보러 갈래?”
그렇게 우리는 원장선생님 모르게 ‘007작전’을 벌이기로 했다. 반장이 엄마를 통해 몰래 선생님의 연락처와 주소를 알아냈고 모든 것이 척척 진행되었다. 우연히 학원 달력에서 ‘현숙 생일’이라고 표시된 날짜에 눈치도 없이 선생님 댁을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
휴대폰도 없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 선생님 댁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착착 진행되던 중, 반장이 물었다.
“얘들아, 근데 우리 선생님 생신인데 선물 사야 하지 않을까? 선물 하나씩 갖고 올까? 아니면 돈을 걷어서 같이 선물을 살까?”
반장의 한 마디에 다들 동조하는 분위기였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학원에서 돌아오자 마자 엄마께 말씀 드렸다.
“엄마, 우리 현숙 선생님 알지? 그 선생님 생신 선물 사기로 했는데 3천원 줄 수 있어?”
사실 우리 집은 형편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 사업이 기울면서 집에 빚이 생긴 이후로 부모님은 밤낮으로 일하셨지만 빚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었다. 입는 것, 먹는 것 아끼더라도 내가 기가 죽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시며 학원을 보내주셨었다. 아버지께서는 새벽 6시부터 무거운 벽돌을 나르셨고 엄마는 발품을 팔면서 공공근로를 하셨었다. 두 분께서 힘겹게 모은 일당은 이미 월세와 공과금으로 빠르게 빠져 나간 뒤였다.
아주 작은 방에 우리 네 식구가 모여 아등바등 부대끼며 살아가는 걸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근데 한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쭤보았다. 엄마는 내 눈치를 보셨고,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 그만두셨다. 그때 당시 그때 당시 학원비가 한달에 3만원이었니 3천원은 나에게도, 부모님께도 작은 돈은 아니었었다.
“괜찮아, 엄마.”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걸 가져다 드릴게. 선물은 그런 거잖아. 내가 제일 소중한 걸 주는 것.”
나는 작은 책상을 둘러보았고 생일선물로 받았던 제일 아꼈던 구피 인형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제일 아끼던 인형이었고 매일 밤 꼭 껴안고 함께 잠들었던 친구였지만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그때 당시 선생님께 드릴 것은 그 인형뿐이었다. 구피와 만난지 얼마되지 않아 헤어지는 건 정말 슬펐었지만 그게 나의 진심이자 최선이었었다.
약속한 날, 우리는 지하철역에서 만났다. 친구들에게 인형을 보여주며 말했다.
“얘들아. 나는 선물을 샀어. 쨘! 너무 귀엽지?”
“진짜 너무 귀엽다.”
나는 씩 웃었다. 선생님 댁에 도착했을 때 친구들은 돈을 모아 케이크와 선물을 건넸고 나는 가방에서 가장 아끼던 구피 인형을 조심스레 꺼냈다. 그 순간의 감정은 참 묘했다. 선생님을 다시 만났다는 기쁨과 구피와 헤어져야 한다는 슬픔이 공존했다. 선생님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셨고 다행히 구피도 반갑게 품어주셨다. 선생님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나는 구피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집으로 왔다.
“안녕, 선생님이랑 잘 있어. 언니는 갈게.”
방에 들어서자 구피가 늘 앉아있던 작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구피가 웃으며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바닥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술을 꾹 누른 채 눈을 감았다.
그 이후, 인형을 갖고 싶다고 아이처럼 조르지도 않았고 문득 예쁜 인형이 보여도 손을 뻗지 않았다. 다시 품에 안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도 있었지만 그날의 슬픔과 구피에 대한 미안함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단순히 인형 하나를 잃은 일이 아니었다. 소중한 누군가를 위해 내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놓았던 순간, 나는 어쩌면 어른이 되는 법을 처음으로 배웠는지도 모른다.
부드러운 귀, 커다란 눈과 어린 내가 마지막으로 품었던 따스한 온기까지.
나는 여전히 그날의 구피를 기억한다.
이제는 정말 안녕, 구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