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의 태양, 동지의 달

by 북극곰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너는 하지의 태양 같았다. 지치지 않는 에너지, 눈부시게 밝은 웃음, 얼굴엔 그늘 한 점 없었다. 반면 나는 동지에 뜬 달 같았다. 차갑고 말없이 흘러가는 긴 밤처럼 오래전부터 그림자가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는 하지와 동지처럼 극과 극이었다. 너의 눈빛은 여름 한낮처럼 거침없었고, 두려움이란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에 비해 나는 희망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았다. 차가운 공기가 숨결 사이로 스며들었고 내 마음도 그 찬기 속에서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너는 나를 밝게 비추었지만 동시에 나의 어둠을 더 선명하게 만들기도 했다.


당연히 어울릴 수 없는 계절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너에게 끌렸다. 너 또한 조심스럽게 나를 바라봤고, 우리는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서서히 이끌렸다. 닿을 수 없다고 믿었던 경계는 결국 우리 사이를 잇는 선이 되어 있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우리는 조심스럽게 온도를 맞춰가기 시작했다.


낮과 밤의 길이가 나란해지는 계절 추분, 우리는 정말 행복했다. 너는 조금 차분해졌고, 나는 조금 따뜻해졌다. 서로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그저 다르다는 걸 받아들이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시간이었다. 우리는 함께 웃었고, 나란히 걸었으며, 모든 것이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는 듯했다. 내 그림자는 너의 빛에 조용히 녹았고 너의 햇살에도 서서히 바람이 스며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며 하나의 계절 속에 머무는 듯했지만 균형은 오래가지 않았다. 추분이 지나자 밤은 다시 길어지고 해는 점점 짧아졌다. 행복했던 시간도 잠시였고, 우리의 계절도 그렇게 기울었다. 낮이 짧아진 만큼 내 안의 그늘은 점점 너의 빛을 삼켜갔다. 나는 여전히 어둠 속의 차가운 달이었고 너는 점점 생기를 잃어갔다.


그날, 네 손을 잡았을 때 처음으로 차가움이 느껴졌다. 익숙했던 온기가 사라지고 낯설 만큼 차가운 온도가 나에게 스며들었다. 내 품에 있던 너는 더 이상 예전의 따뜻하고 밝게 빛나던 네가 아니었다.


괜찮다고 말하던 너는 왠지 슬퍼 보였다. 생기를 잃어버린 눈빛, 웃음이 사라진 표정이 마치 내 그림자가 너를 덮고 있는 듯했고, 내 차가움이 너를 갉아먹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너의 따뜻함을 사라지게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오랫동안 맴돌았다.


그때부터 나는 너에게서 멀어지는 연습을 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너의 온기를 앗아간 나를 자책하며
너에게서 거리를 두었다. 너의 가장 아름다운 빛이 내 그림자 속에서 사라져 갔다면 그것은 더 이상 사랑이라 부를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널 놓아주기로 했지만 막상 그 말을 꺼내려니 그날따라 유난히 밤이 길게 느껴졌다. 잠이 오지 않는 밤, 온몸을 감싸는 고요한 어둠 속에서 나는 말없이 팥죽을 끓였다. 불빛조차 붉게 번지는 주방 한편에서 기억을 하나씩 저으며 조심스레 시간을 익혀갔다.


팥죽 속에 작고 하얗고 동그란 너를 닮은 새알을 넣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감싸주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면 내 마음의 마지막 온기를 담고 싶어서였을까. 팥죽은 천천히 끓었고 다음날 한 그릇을 정성스럽게 담아 너에게 건넸다.


“우리... 헤어지자.”


그 말은 생각보다 담담하게 흘러나왔다. 하지만 네 눈동자엔 당황스러움이 피어올랐고 물었다.


“왜? 갑자기?”


나는 팥죽을 한 숟가락 떠보며 애써 담담한 척 말했다.


“이 팥죽이… 내가 살아가는 세계 같아. 어둡고 무겁고, 끝이 보이지 않지. 그 속에서 하얀 새알처럼 반짝이는 너를 보면 나는 늘 미안했어. 이런 곳에 너를 오래 머물게 했다는 게.”


조금의 침묵 뒤에 말을 이었다.


“너는 나와는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야. 너는 더 멀리, 더 맑은 곳으로 날아가야 해.”


'너의 삶에 더는 나의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않기를 바란다. 어둠은 내 몫으로 감당하고 너는 그 어둠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아 하지 못했던 말을 네가 떠나고 혼자 되뇌었다. 그리고 너의 따스한 온기를 잊고 그림자 속에서 차가운 달이 되는 법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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