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아닐지도

너의 아픔에 물든 마음

by 북극곰

사람들은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말하곤 한다. 누군가는 웃는 얼굴이 예뻐서 누군가는 다정한 말투에 마음을 열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 사랑은 그런 방식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나를 스쳐갔던 대부분의 사랑은 누군가의 아픔을 외면하지 못하면서 시작되었다. 그저 돕고 싶다는 마음이 어느새 감정이 되어 있었다


어쩌면 그건 직업병이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마음을 살피고 상처를 알아차리고 가볍게 흘려보내지 못하는 습관이 너와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어색한 공기가 싫어서 말을 섞기 위해 시작한 대화였다. 네가 궁금했다기보다 숨 막힐 것 같았던 적막을 깨고 싶었다. 시시콜콜한 호구조사보다는 너의 언어로 대화를 하고 싶었다. 그때까지 내가 던진 소소하고 사소한 질문들이 내 마음속에 너를 조용히 심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질문을 던질수록 미세먼지처럼 희뿌연 안개처럼 멀리 있던 너는 안개가 걷히면서 점점 더 선명해졌고, 그 선명함이 나를 움직였다.


어느덧, 너는 전에 만났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모든 것을 주어도 더 주고 싶다는 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이라지만 너의 전여자 친구는 감정을 둘로 나눠 너에게 큰 상처를 줬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네가 안타까웠고 나와 같은 언어를 말하고 있었고 그 선명함이 나를 조금씩 움직였다.


너의 그 한마디가 내 마음속에 씨앗이 되었고 너는 계속해서 꽃이 필 수 있도록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물을 주었다. 무심한 듯 건넨 말 빙그레 미소 짓는 얼굴 세심한 배려가 자꾸만 떠올랐다. 그 모든 것이 내 안의 씨앗을 적셨고 너에 대한 마음은 어느새 연두색 싹을 틔웠다. 그리고 그 위에 분홍색 꽃을 피웠다.


마음의 꽃이 점점 필수록 너의 하루가 궁금해졌다. 무슨 생각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는지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지친 하루 끝에 어떤 마음으로 잠들었는지. 문득문득 네가 보고 싶어졌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도 네가 웃고 있다면 좋겠다고, 네가 괜찮다면 다행이라고 그런 마음이 자꾸만 생겨났다. 너를 향한 마음은 어느새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자라나 있었다. 내 안에서 피어난 그 꽃은 너라는 햇살을 기다리며 조금씩 더 짙은 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계속 네가 신경 쓰이고 네가 보고 싶지만 이게 동정일까? 사랑일까? 나는 확신하지 못한다. 너의 아픔을 넘어 너라는 사람 자체를 바라봤지만 과연 너의 상처까지 끌어안고 앞으로 나아갈 만큼 너에게 확신이 있는 걸까?

너의 아픔이 특별해 보여서 움직였던 마음이 그 아픔이 사라진 후에도 계속 머물 수 있을까? 그저 순간의 착각이 아닐까?


그래서 비겁하지만 나는 한 발 물러섰다. 다가가고 싶으면서도 동정이라는 이유로 조심하게 되는 마음.

사랑일지도 모르지만 또 동정일지도 몰라 자꾸만 주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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