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멸등

by 북극곰

길을 걷다 보면 도로 위에서 깜박이는 점멸등을 마주할 때가 있다.

멈추라는 말도, 지나가라는 말도 없이 그저 제자리에서 깜빡이며 주의를 환기시킨다.

빨간 색도, 초록색도 아닌 얼굴로 작은 경고의 모호한 빛을 반복해서 비출 뿐이다.


내 사랑도 점멸등처럼 내 앞에 머물렀다. 닿을 듯 손을 내밀지 않고, 사라질 듯 끝내 꺼지지도 않은 채로. 불규칙한 깜빡이는 불빛은 마음의 길을 자꾸 어지럽혔다.


멈춰서니 온기가 남아있었고, 다가서자니 상처의 그림자가 먼저 내 발을 붙잡았다.

말을 꺼내기엔 애매했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웃기에는 이미 마음이 너무 흔들려 있었다.

결국, 나는 네 앞에서 이도 저도 못한 채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도 점멸등 앞에 서면 본능처럼 속도를 줄인다.빛이 깜빡일 때마다

마음이 흔들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멈춘다.


나는 계속 이 자리에 서 있어야 할까,

아니면 스스로 신호를 정하고 건너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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