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크림

by 북극곰

말없이 포크를 내려놓고, 케이크 위의 생크림을 한동안 바라본다.

부풀어 오른 흰 곡선들은 금방이라도 형태를 바꿀 것처럼 연약해 보인다.

이 부드러움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왜 자꾸 이런 것들에 마음을 주게 되는 걸까.


생크림은 온도에 민감하다.

너무 차가우면 굳어버리고, 조금만 따뜻해져도 가장 먼저 무너진다.
모양을 유지하려 애쓰는 그 짧은 시간이 이상하게도 사랑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두르지도, 방심하지도 않아야 비로소 제 모습을 지켜낼 수 있다는 점에서.


처음 누군가를 좋아했을 때도 그랬다.
크게 요동치지는 않았지만, 가슴 안쪽으로는 달콤한 생크림이 몽글몽글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말로 다 꺼내기엔 아직 이르다고 생각했지만, 혼자만 품고 있기에는 이미 넘쳐흐르는 감정이었다.


결국 그 마음을 내어놓았지만 그 사람은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뜨거운 마음으로 녹이려 했으나 그 차가움은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열정은 흘러내렸고, 그 사람은 더욱 멀어져 갔다.


그 이후 나는 거리를 배웠다.
붙잡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을 만큼, 멀어지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은 만큼의 거리.

이 마음이 굳어버리지도, 쉽게 녹아 흘러내리지도 않도록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는 방법을 배웠다.


사랑은 불꽃처럼 타올라야만 아름다운 줄 알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깨달았다.

진정 오래 남는 것은 불꽃이 아니라, 불쏘시개가 지핀 아궁이의 불이었다.

한순간 타올라 사라지는 격정이 아니라, 아랫목에 은근히 스며드는 따뜻함이 마음을 오래도록 지켜준다.

그 온기는 요란하지 않지만, 서로의 삶에 스며들고 가장 깊은 자리에서 사랑을 오래 머물게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케이크 위의 무너지지 않는 생크림처럼,

사랑도 서로의 진솔한 모습을 지켜낼 때 가장 아름답고 오래도록 머문다.

불꽃놀이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고요히 스며드는 꾸밈 없는 마음이 끝내 사랑을 오래도록 지켜준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달콤함, 그 은근한 온기가 사랑을 오래 머물게 한다.


때로는 잘보이고 싶은 마음에 생크림 위에 딸기 토핑을 올리듯, 거짓말이나 허세로 자신을 꾸미고 싶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욕심이야말로 사랑을 가장 먼저 불안하게 만든다.


사랑은 본래의 모양 그대로일 때 가장 빛난다.

덧붙이지 않아도, 꾸미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달콤함이 오래 남는다.


더 예뻐 보이려 애쓰지도, 사라질까 두려워 붙잡지도 않으면서,

그저 나란히 걸으며 자신의 모습을 지켜내는 그 순간, 사랑은 가장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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