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

by 북극곰

출근길,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건다. 가장 먼저 계기판을 훑고 기름의 눈금을 확인한다. 부족한 걸 알아차리면 바로 가장 저렴한 주유소를 찾아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인다. 1원이라도 더 싼 곳을 찾기 위해 가격을 비교하다 보면 ‘그 1원이 뭐라고’ 싶다가도, 결국 그 작은 차이가 더 멀리 갈 수 있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안다.



사랑도 그렇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에도 어느 정도의 여유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 연료는 관심일 수도 있고, 배려일 수도 있다. 때로는 말 한마디, 시선 하나가 사랑을 움직이는 연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이 텅 비어 있다면 사랑할 용기조차 나지 않는다. 비어 있는 탱크로는 아무리 좋은 길도 달릴 수 없듯, 사랑도 먼저 나 자신을 채우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래야 비로소 누군가의 곁을 함께 달릴 수 있다.


그리고 사랑이 어떤 방식으로 달리는 지도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휘발유 같은 사랑을 한다. 깨끗하고 가볍고 빠르게 타오르는, 순간의 설렘이 눈부신 사랑. 그러나 그만큼 금방 증발해버리기도 한다.


반면 어떤 사랑은 경유와 같다. 뜨겁게 타오르지는 않지만 묵직하게 오래 달릴 힘이 있다. 대신 보이지 않는 배려와 작은 노력이 요소수처럼 꾸준히 필요하다. 그것이 부족하면 서서히 서로를 질식시키고, 매연 같은 흔적을 남긴 채 유해한 이별로 끝나기도 한다.


그렇게 끝난 사랑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공기 중에 오래 머무는 잔여물처럼, 그 사람의 말투와 습관, 함께 보냈던 시간이 내 일상 속에 고여 있다. 차가 멈춘 뒤에도 한참을 떠도는 배기가스처럼 지난 사랑이 남긴 감정의 입자들은 내 마음 어딘가에 머물며 다음 사랑의 공기를 흐리게 만든다. 그래서 다음 사랑 앞에서는 자꾸만 멈칫하게 된다.


연료가 떨어지면 차가 멈추고, 마음이 고갈되면 관계도 멈춘다. 어떤 사랑이든 각자에게 맞는 연료가 필요하다. 휘발유 차에 경유를 넣을 수 없듯, 사람의 사랑 방식도 억지로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마음의 계기판을 들여다본다.
내 안에 사랑의 연료가 충분한지, 여유와 따뜻함이 남아 있는지. 누군가를 사랑하기 전에 내가 얼마나 따뜻한지를 먼저 확인한다. 내 마음이 제속도로 달릴 수 있어야, 함께 달릴 사람도 길을 잃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언젠가 다시 출발할 수 있을 만큼,


천천히 마음의 탱크를 채워두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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