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가락 끝에 걸린 고기는 이미 식어 굳어 있었고, 입안에 넣자마자 불쾌한 식감이 혀끝을 마비시켰다. 아무리 씹어도 분해되지 않는 고무줄 같은 질긴 덩어리. 맛이 있을 리 없었다. 턱 근육이 뻐근해질 정도로 고기를 짓씹으며 나는 생각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조금만 더 먹으면 끝이야.'
아깝다는 생각과 여기까지 먹어온 노력이 헛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이 억지스러운 식사를 이어가게 했다. 이미 몸은 목구멍을 좁히며 거부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나는 기어코 그 질긴 불쾌함을 꾸역꾸역 삼켜 넘겼다.
결국 사단은 모두가 잠든 새벽에 일어났다.
더부룩함에 뒤척이다 끝내 잠들지 못하고 일어난 새벽, 몸은 더 이상 정직하지 못한 내 욕심을 견뎌내지 못했다. 화장실 바닥의 차가운 타일 촉감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고요한 시간 나는 속 안에 든 모든 것을 게워내야 했다. 억지로 밀어 넣었던 그 질긴 고기 조각들이 비릿한 신물과 함께 쏟아져 나왔다.
전부 쏟아내고 나서야 비로소 숨이 쉬어졌다. 명치를 짓누르던 돌덩이가 사라진 자리에는 허무함과 함께 서늘한 깨달음이 차올랐다. 남기지 않으려 억지로 삼켰던 그 음식들이, 결국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만들고 나서야 내 몸을 떠난 것이다. 비워진 속을 부여잡고 차가운 바닥에 앉아 생각하니, 비단 음식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람도, 삶도 꼭 그런 것 같다. 이미 상했거나 내 몫이 아닌 걸 알면서도, 단지 아깝다는 이유로 혹은 여기까지 왔다는 이유로 억지로 삼키며 버티는 것들이 있다. 맛없는 고기를 씹듯, 아무런 즐거움도 의미도 없는 관계와 일을 "지금까지 한 게 얼만데"라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하며 억지로 견뎌낸다. 결국 남기지 않겠다는 고집이 새벽녘의 구토처럼 더 큰 탈이 되어 돌아오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남긴다는 건 낭비가 아니라 선택일지도 모른다. 나를 해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배려. 다 먹어야 성실한 게 아니라,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을 과감히 뱉어낼 줄 아는 것도 삶을 잘 사는 방법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