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나날>
나는 말이라는 틀에 갇혀 있다
일본에 살며
영화 각본을 쓰는
한국인 작가 '이(심은경)'가
글이 써지지 않자 훌쩍 여행을 떠난다...
유튜브를 통해 소개된 대략적인 스토리와
눈 덮인 산속 여관의 이국적 풍경에 끌려 극장에 갔다.
예매할 때부터 기대가 컸다.
100석이 안 되는 가장 작은 상영관에서
한가로운 평일 낮 2시라면
혼자서 일본 여행을 떠나 온 것처럼
조용하고 호젓하게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겠구나...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영화 시작 전 관객수가 10명도 채 안돼 안심하고 있는데
바로 옆자리에 덩치 큰 청년 한 명이 앉더니
콜라를 쪽쪽 빨며 팝콘을 아그작대기 시작한다.
꼬였다.
옆자리 관객이 자꾸 신경 쓰여
모자 쓴 상태로 좌석 깊숙이 파묻혀 앉아
한 손으로 오른쪽 눈과 귀를 가리고 영화에 집중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하얀 마을 장면만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파란 바닷가에 청춘 남녀의 이야기가 계속 전개된다.
혹시 다른 영화를 보러 잘못 들어온 걸까
생각하는 사이
영화 속 영화는 끝이 난다.
이제 드디어... 하는데 눈이 감긴다.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는
어느 유명한 소설의 첫 문장 같은 장면이 나오자마자
나는 졸기 시작했다.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깨어 봤던 몇 개의 장면들만
머릿속에 남았다.
그중 기억에 남는 한 장면.
한 밤 중에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를 걷는 두 사람 모습이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한 구절을 떠올렸다.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영화를 보다 졸긴 처음이다.
유튜브나 넷플릭스의 수많은 콘텐츠처럼
특별한 사건도
화려한 인물도
나오지 않아 지루해서였을까.
혀에서부터 뱃속까지 불이 나는
매콤한 오징어 볶음만 먹다
심심하지만 건강한 사찰음식으로 한 끼를 때운 것처럼
복잡하던 머릿속이 한결 비워진 기분이다.
이제 다시 글을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