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안성기를 추모하며

by 본드형

배우 안성기의 부고 뉴스를 보자마자

떠오른 영화가 있다.

시골에서 상경한 가난한 청춘들의 이야기.

<바람 불어 좋은 날>


한창 사춘기이던 시절,

영화잡지에서 우연히 본 스틸컷 하나에 꽂혔다.


(나중에 영화를 보고 나서야 알았지만)

중국집 배달부 덕배를 부잣집 딸 명희가 유혹하던

그 흑백 장면은

봄바람에 날리는 안성기의 장발과

유지인의 긴치마로

내 기억 속에 너무도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아역 배우를 하다 학업으로 영화를 그만둔 뒤,

대학에서 베트남어를 전공한 안성기는

'베트남 전쟁'이 터지자 다시 영화계로 복귀하였고

그 바람에

이장호 감독을 만나고,

이 영화로 대종상 신인상을 받으며

운명적인 '국민배우'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만약 그 전쟁이 없었더라면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지금 생각하니

흔한 스캔들 하나 없이 살아온 그 성실함이

명희 앞에서 말 더듬던 순진한 덕배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


서양화가인 그의 아들이 SNS에 올린

흑백 사진을 보며 바랍니다.


별이 된 당신,

그 섬에 가서 편히 잠들시길.




keyword
작가의 이전글슬럼프에 빠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