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중독에 빠지다

보드게임

by 본드형
한 판 더?


두 판을 연속으로 이긴 아들 녀석이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아내와 나를 바라본다.


좋아 한 판 더!


벌써 밤 열두 시가 넘어가는데

아내가 말똥말똥한 눈으로 전의를 불태운다.


난 잘래. 졸려...


포커나 화투라면 어찌 붙어 보겠지만,

처음 해 보는 게임의 법칙이란 게

복잡하게만 느껴진 나는

포기를 선언한다.




요즘 우리 가족은

<스플렌더>란 보드게임에 빠져 있다.


6가지 보석으로 이루어진 토큰을 이용해 살 수 있는

다양한 점수의 개발카드와 귀족타일을 모아

15점이 먼저 나면 이기는 방식인데,


쉽게 말하자면,

얻은 자원들을 가성비 있게 사용해

돈을 빨리 불리는 일종의 투자게임이다.


아무리 처음 해 보는 게임이라도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를 실제 해 봤던 아내와 내가

금방 따라잡을 거란 생각은 완전 착각이었다.


매 번 수업료(게임비)를 뜯겨 가며

며칠에 걸친 대결에서

단 한 번도 아들을 이기지 못한

우린 슬슬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드디어 방법을 찾았다.


유튜브에서 찾아낸

'스플렌더 잘하는 법' 동영상들을 꼼꼼히 보면서


1) 무슨 카드가 가성비가 좋은 건지

(최소 토큰수로 살 수 있어야 한다)

2) 상대를 어떻게 견제해야 하는 건지

(황금 조커로 미리 찜을 해야 한다)

3) 함부로 사지 말아야 하는 카드는 뭔지

(고득점 카드 욕심부리다 망한다) 등등


주요 팁들을 익힌 우리는

매일 낮 최소 한 시간씩 실전연습까지 해가며

아들에 대한 설욕전을 준비했다.


그리고 마침내 어제,

예쁘게 펼친 게임판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며

한 판 어때? 만원 빵 ^^ 했더니

ㅋ 콜! 이란 답이 금방 돌아왔다.


저녁을 삼겹살로 든든히 먹은 후

벌인 두 판 결과,

한 번은 아내가 한 번은 내가 승리하자

거드름 피우던 아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게 보였다.


여친 전화라며 방으로 들어가는 아들.

그 모습 뒤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행복해하는 아내.


우리 셋이 집에서 각자의 스마트폰 안 보고

똑같이 빠져 본 거 참 오랜만이네.


어, 듣고 보니 그러네...

행복한 중독이었다.




방에서 나온 아들이

심기일전한 표정으로 다시 한 판 하자고 한다.

이제 피곤하다고, 자야 한다고 빼는데도

어림없다고 우긴다.


게임 잘한다는 여친에게 기운이라도 받은 듯

두 판을 내리 이겨버리는 녀석.


역시 젊은 놈 체력은 못 당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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