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로 시작해 영화로 끝나다
넷플릭스 <미래일기>
어디까지가 진심일까?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아진다는 건
뭔가에 푹 빠진다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살아보니,
현실은 이상과 다르고
인생은 영화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 것 같다.
영화광이자 낭만주의자인 나도 가끔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며
이미 사라진 연애 감정을 애써 되살려보려 노력하기보단,
차라리 한창 연애에 목마른 젊은 남녀들이 나오는
짝짓기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보며
현실 속 사랑 게임에서 대리 만족을 찾곤 한다.
하지만 많은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그렇듯
보면서 드는 의심은 어쩔 수 없다.
어디까지가 진심일까?
넷플릭스 <미래일기>는 좀 달랐다.
보통의 연애 리얼리티가
여러 명이 나와 원하는 짝을 찾는 결과에 집중한다면,
<미래일기>는 서로 만난 적이 없는 두 남녀가 짝이 되어
일기에 적힌 예언대로 연애해 가는 그 과정에 몰입시킨다.
오키나와에 사는 대학생 '마아이'(19살 여)와
홋카이도 출신의 요리사 '타쿠토'(24살 남)에게
일기가 배달된다. 다음날 처음과 마지막 일어날 일이
적혀있고 두 사람은 그걸 따라야 한다.
한 달여 동안 며칠에 한번 데이트를 하는데
연락처를 주고받거나 방송 외 따로 만날 수도 없다.
재미있는 건,
마아이는 타쿠토가 좋아지더라도
그렇다는 말과 표현을 절대 할 수 없다는 거.
그리고 마지막 일기장엔 '영원한 이별'이 적혀 있다는 거.
시리즈의 총 8편에 걸쳐서
첫 만남, 손잡기, 볼뽀뽀로 단계가 발전하면서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섬세한 감정선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특히, 턱 밑에 점이 이쁜 마아이는
특유의 환한 웃음으로 상대인 타쿠토를 사로잡아
어떤 로맨틱 코미디 영화보다도 더 관객을 몰입하게 만든다.
뻔한 리얼리티 예능이라고 방심했다가
나 역시 그녀의 순수한 매력에 빠져 진심이 돼 버렸다.
<미래일기>는 이미 20년 전 일본 TBS에서 제작해
큰 인기를 끌었던 프로그램을 리메이크한 것이라 한다.
일기 형식으로 간략히 주어진 각본에
출연자들이 각자의 생각과 말로 채워 연애를 진행하는
픽션 반 리얼 반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그 과정에서 그들의 실제 감정이 움직이고
결국 사랑에 빠지는 경험이 가능해진다.
뭔가에 빠진다는 건
주어진 리얼에 나를 채워
그것에 진심이 된다는 의미다.
대충 쓴 각본에
초짜 배우들이라도
그 진심이 담긴다면 멋진 영화가 되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