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들기엔 좀 쑥스러운 격자무늬에 장바구니 같지만 고급스러운 소재에 세련된 디자인이 자꾸 눈길이 갔다.
무엇보다 가격이 착해서(아내 말로는 정가 대비 70%는 싼 거 같다고 속삭여서) 큰맘 먹고 그냥 사버렸다.
사실 가방을 들고 다닌 건 참 오랜만이다.
여행 갈 때 빼고는 전 직장에서 컨설턴트로 일할 때 노트북 가방이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는 지갑, 열쇠, 스마트폰 등 간단한 소지품은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딱히 불편하다는 느낌도 없었고, 출퇴근길 복잡한 전철 안에서 몸에 지니고 있는 게 더 안전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막상 새로 산 가방에 며칠 들어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바지 주머니 여기저기에 쑤셔 넣어 불룩하게 튀어나와 보이던 소지품들을 가방에 몽땅 털어 넣으니 일단 움직임이 편하고 옷매도 산다. 게다가 평소 들고 다니지 못했던 책이나 노트, 필기구 등도 소지할 수 있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즉시 메모할 수 있다. 귀갓길 마트에 들러 물건 살 때 불필요한 봉투값을 아낄 수도 있다.
이래서 여자들이 가방을 들고 다니는구나...
내 몸에 모든 소지품을 지니고 다니던 오랜 삶의 방식을
새로 생긴 가방 하나로 바꾸기 시작하니까
갑자기 요즘 신사업 업무로 한창 스터디 중인 'Web 3.0'이 떠올랐다.
탈중앙화(Decentralization)
Web 3.0이란 인터넷의 '탈중앙화(脫中央化)' 움직임이다.
처음 인터넷(Web 1.0)이 나왔을 땐 사용자들이 데이터를 단순히 소비(읽기)만 했다면, SNS(Web 2.0)로 바뀌면서 콘텐츠를 직접 생산(쓰기)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사용자들이 소비한 데이터와 생산한 콘텐츠를 플랫폼 기업들만 독점적으로 소유(중앙시스템에 보관/처리)하다 보니, 정책 운영이나 수익 배분에 있어 공정성과 투명성이 떨어지는 문제점이 생겼다.
좀 쉽게 얘기하자면
아무것도 없는 빈 땅(플랫폼)에다 열심히 씨 뿌리고(데이터) 농사지어 수확한 농산물(콘텐츠)을 땅주인(기업)이 자기 창고(중앙시스템)에 넣어 두고 마음대로 시장에 팔아 일부를 나눠주는데 농부(사용자) 입장에서 제 값에 판 건지, 내 몫은 맞는지 의심스럽다는 거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나올 법한 이야기가 인터넷 세상에서도 나오기 시작한 거다.
Web 3.0은 분산 시스템인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이러한 디지털 자산(데이터/콘텐츠)의 소유를 사용자가 직접 또는 커뮤니티와 공동으로 하자는 개념인데, 중앙시스템을 가진 플랫폼 기업이나 정부/금융 기관의 통제에서 벗어나자(탈중앙화)는 하나의 시대사조다. 그리고 그런 움직임이 구체화된 것들이 최근 젊은 세대가 열광하고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가상화폐나 NFT아트다.
어쩌면 Web 3.0은 기술이라기보다
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메가트렌드에 가까울 듯싶다.
아날로그 시대에 익숙한 나는
물건 하나 제대로 살 수 없고가격이 매일 널뛰는 비트코인이 어떻게 화폐인지, 이상한 그림 하나를 복잡한 코드로 만들어 거래만 불편하게 만든 NFT가 어떻게 자산인지,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러한 시대사조에는 반드시 그 배경이 있고, 미래를 짊어질 많은 MZ세대가 공감한다는 건 앞으로 대세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