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회의를 하다 현타가 왔다

평생 속고 살았다

by 본드형
너 누구냐?


가끔 화상회의를 하다 보면

녹음을 통해 듣는 내 목소리가 평소 듣던 것과 달라서

이상할 때가 있다. 톤이 좀 높다고 할까... 암튼 별로다.


찾아보니 다 과학적 이유가 있단다.

평소 내가 듣는 내 목소리는 공기뿐만 아니라 내 몸, 특히 두개골을 포함한 뼈의 진동을 통해 함께 전달되기 때문에 저음까지 풍성하고 더 입체적으로 들린다고 한다.


인정하기 싫어도,

녹음된 내 목소리가 남들에게 들리는 진짜란 소리다.

나만 속고 살았단 소리다.




나는 '학력고사' 세대다.


주관식 문제가 처음 도입된 해, 나는 대학 입시에 떨어져 재수를 했다. 물론 그 당시 주관식 문제는 서술형이 아닌 주로 단답형이었지만, 4개 항목 중 1개 정답을 고르는 사지선다(四枝選多) 형 객관식 문제를 푸는데 익숙했던 터라 적지 않게 당황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자신만의 관점으로 다양한 해답을 찾기보다

타인의 관점으로도 분명한 정답을 찾는데 더 익숙했기에

'나의 시각 = 남의 시각'이라는 생각이

'내게 정답 = 남도 정답'이라는 믿음이 여전히 크다.


'우리' 공통의 가치가 큰 그 시절을 살아온

나 같은 세대가 라떼를 외치는 꼰대가 돼가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불편하기만 한 화상회의가 좋은 점도 있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믿던 것들이

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배우게 되니 말이다.




'현타(現time)'라는 말이 있다.

헛된 꿈이나 망상 따위에 빠져있다가 자기가 처한 실제 상황을 깨닫게 되는 순간을 의미하는데,

나는 '현명해지는 시간(賢time)'으로 해석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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