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본드형 Jul 01. 2022

그녀는 공감을 원한다

연민이 아니라

나는 해냈는데 왜 못하지?


'흙수저' 부자가 '금수저'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덜 동정하고 부의 재분배도 덜 지지한다는 미국의 연구결과가 나왔다는 기사를 봤다.


나도 열심히 노력해 자수성가했으니

그들도 할 수 있다는 인식이란다.


얼핏 이해가 가면서도

자신도 그 처지에 있어봤으니 공감할 수 있을 텐데... 왜?

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 일수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사전을 찾아보니

공감(Empathy)과 동정(Sympathy)은

전혀 다른 의미다.


어원을 각각 풀어보면

'감정(feeling)'을 뜻하는 'pathy'에다가

'내면(in)'을 뜻하는 em~과

'함께(with)'를 뜻하는 sym~을 붙인 단어다.


즉, 다른 사람이 슬퍼하거나 고통을 겪을 때

단순히 연민을 느끼는 동정보다는

그 사람의 입장에서 진심으로 공감하는 게 훨씬 어렵다.

 

마치 옆에 아이가 울면 따라 우는 게 동정이라면

우는 이유를 이해해 기저귀를 갈거나 젖을 주는 게

더 높은 내공이 필요한 공감의 레벨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나는 얼마나 공감을 잘하는 사람일까

다시 또 궁금해진다.


그냥 동정하는 거면서 공감하는 거라고

편하고 위선적인 삶을 산 건 아닐까?




가끔 남자는 여자가 화난 이유도 모르고

일단 면피성으로 미안하단 소리를 할 때가 있다.


그때 "뭐가 미안한 건데?"하고 그녀가 계속 째려보면

분명 공감(Empathy)을 원하는 거다.


"어쩌라고?" 하며

같이 화를 내는 동정(Sympathy)이 아니고...


그녀는 공감을 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불어가 섹시한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