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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드형 Jul 19. 2022

무엇이 부러우리오

청계산에서

금방이라도 비가 뿌릴 듯한 하늘색만큼이나

어둡고 칙칙한 등산복을 맞춰 입은 배 나온 중년 아저씨들.


그들 속에 절대 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주말에 청계산이라도 올라갔다 오자
내려와서 막걸리에 고기도 먹고


올해 초, 국내 굴지의 중견기업 대표에 오른 뒤

계속되는 실적과 주가 하락에 마음고생이 심한 친구 A가

청한 산행이었다.




토요일 오전.

청계산 입구역 2번 출구 앞은

초복 더위에도 아랑곳없이 많은 등산객들이 모여있었다.


친구 A는 역시,

두 달 전 봤을 때 보다

얼굴은 더 거칠고 머리는 더 하얘져 보였다.


또 다른 친구 B도 도착했다.

그는 얼마 전 긴 휴가 내서 제주 올레길을 걷고 왔다며

밝고 건강한 모습이었다.


산행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친구 A가 슬슬 쳐지기 시작하더니

정상을 50미터 앞두고 주저앉아 버렸다.


여름엔 수상스키, 겨울엔 스노보드를 즐기며

우리 셋 중 가장 젊게 살던 친구였는데

회사 대표라는 무게에 눌려 운동할 틈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결국 나와 친구 B만 정상인 매봉까지 올라

인증사진을 찍었다.

아래서 쉬고 있던 친구 A와 합류해

산을 내려오는데 불쑥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아, 남은 인생의 내리막길도
이렇게 좀 편했으면 좋겠다


친구 A가 들었는지 맞장구를 쳤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올라갈 때 봐 두었던 등산로 입구 식당을 찾았다.

음식이 나오기 전,

친구 A가 제조한 얼음 같은 맥사(맥주+사이다) 한잔을

들이키니 세상 부러울 게 하나 없었다.


그래, 이 맛이야. 이게 사는 거지.


땀에 쩐 얼굴이지만 분명 행복해 보이는 친구의 모습에서

소박한 바램들이 떠올랐다.


남은 인생.

청계산 하나 오를 수 있는 체력과

막걸리 한잔 마실 수 있는 재력과

그 행복한 시간을 함께 할 벗들만 있다면

 

세상 무엇이 부러우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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