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늙어 보여?
아내가 생뚱맞게 묻는다.
사연을 들어보니
처제와 병원에 함께 갔는데
접수처의 간호사가 '딸'이냐고 했단다.
안 그래도 젊어지려고
노화방지 화장품을 이것저것 꾸준히 바르고
최근 탄수화물 줄이는 다이어트도 한창인 사람에게
4살 차이밖에 안나는 동생을... 말이다.
아내는 자신이 '보호자'로서 간 거니
그 간호사가 그냥 말실수한 거로 웃어넘기고 말았지만
은근히 분한 모양이다.
"두 사람 얼굴 보고 한 얘기가 아니다.
병원에선 '보호자 = 부모 또는 자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분명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을 거다."
나도 열심히 달래 보았지만
친정엄마의 오랜 병치레 끝난 지 얼마 안돼
다시 쉰 가까이 된 미혼 여동생의 부모 노릇을 해야 하는 끝이 보이지 않는 '맏이'로서 자기 연민이 되살아난 듯
그녀에게 어두운 표정이 스친다.
맏이
형제자매 중 가장 손위를 뜻한다.
나는 솔직히
혼자 사시는 노모 곁을 지금도
나무처럼 지켜주는 고마운 누나가 있어서
태어나면서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떠안게 되는
'맏이'란 무한책임의 무게를 평소 잘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어릴 적
누구(누나 이름) 엄마로 불리는 게 마냥 부럽기만 했던
철없는 막내 역할에 더 익숙할 뿐이다.
하지만
나의 가정을 꾸리고
오래 직장을 다니다 보니
가장(家長)이나 부장(部長) 같은
보통, 사회 공동체의 연장자(長)를 뜻하는
그 '감투'의 중력이 가끔씩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예전엔 분명 그 자리가 부러웠지만
이제는 묵직함이 그 이상으로 버겁다는 걸 알아버렸다.
그래서,
권한은 없고 책임만 남은
요즘 세상 허울뿐인 '장녀(長女)의 무게'를 잘도 버티는
누이와 아내에게 진심 어린 존경을 보내고 싶다.
그리고,
철없는 막내남의 평생 기득권을 이제라도 포기하고
조금씩 조금씩
그 감투의 무거움을 나눠 짊어지도록 노력해 보련다.
코로나 걸려서 일주일 고생하던 아들 녀석이
다음 달 병장(兵長) 단다고 신이 나서 톡이 왔다.
권한이니 책임이니
모르겠고
그만큼 제대가 가까워졌음을
기뻐하는 것이리라.
아들아,
맏이의 세상에 들어온 걸
환영하고 또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