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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드형 Sep 11. 2022

절대 웃을 수 없는 코미디

<노후자금이 없어>

추석 차례상을 차렸다.


생전 아버지 유언대로

"차리는 사람 맘대로, 먹고 싶은 것 위주로"

술, 고기, 전, 나물, 과일 그리고

추석이니까 송편을 추가했다.


차례(茶禮)란 원래 취지에 맞게

다과상으로 해도 좋다고

단, 당신이 즐기던 양갱만 부탁한다고 하셨었다.


지난주 벌초 가서

이미 어머니와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께 인사는 드렸고

오늘은 돌아가신 아버지 술 한잔 올리고

예전 추억을 떠올리다 보니


당신 가시기 전,

촌수도 잘 모르는 친척들이 모여

2시간 걸려 차리고 20분도 안돼 끝내는

형식적인 제사들을 모두 통합해 간소화해놓고 가신

그 현명하고 쿨하신 사랑에 다시금 고마움이 샘솟는다.



모란 떡 3개는 못 먹는다


1시간 넘게

우리 식으로 여유로운 차례를 마치고

<노후자금이 없어>란 따끈따끈한 최신영화를 봤다.


주인공은 50대 주부 아츠코다.

다니던 회사가 망해 퇴직금까지 날린 남편,
혼전 임신을 하고 호화결혼식까지 원하는 철없는 딸,
그리고 아직 대학에 다니는 아들까지...

빠듯한 살림에
할인마트에서 계약직 일을 하며
알뜰살뜰 노후자금을 모으던 그녀는

직장에서 해고(계약 종료)되고
시아버지 장례식 비용을 전부 부담하는 것도 모자라
씀씀이가 큰 시어머니까지 부양해야 하는
위기가 발생한다.


같은 50대로

노후자금에 관심이 많은 우리 부부는

한 번을 웃지 않고 2시간짜리 코미디를 진지하게 시청했다.


남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찍 노령화된 선진국 일본답게

독특하고 재미있는 시니어 문화를 엿볼 수 있었는데


본인이 살아있을 때

지인들과 효율적으로 치르는 '생전 장례식'이나,

한 집에서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공동체 관계로 살아가는

'셰어 하우스' 같은 예는 한국에도 멀지 않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대사를 하나 고르자면

시아버지가 남편에게 귓속말로 남긴 유언이다.


"모란 떡 3개는 못 먹는다"


영화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츠코가 묻자 남편이 밝히는 의미는 이렇다.


"아무리 좋아하는 모란 떡도

맛있게 느껴지는 건 2개까지

인생 뭐든 적당한 게 좋다는 거겠지..."


과욕을 버리라는 게다.




푸짐하게 잘 차려진 차례상이나 제사상은

조상에 대한 감사와 생전에 못한 효도를 하려는

순수한 의도일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친 형식에 치우치다 보면

가문, 가족이라는 책임의 무게에 눌려

'명절 스트레스'라는 

오래된 사회적 증후군으로 나타나는 게 아닐까.


씀씀이만 큰 줄 알았던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남긴 명언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제멋대로 사는 사람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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