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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드형 Apr 05. 2021

역주행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올까?

빨래터의 친구들


"역주행 곡이다. 듣고 다들 회춘해라~~"라고 톡을 날렸더니 "땡큐다"라는 답이 바로 온다.

아들이 요즘 핫하다며 알려준 '브레이브걸스'의 <롤린> 동영상을 공유하며 친구들과 오래간만에 약속을 잡았다.

역시 아들이 추천한 홍대 인근 중국식 선술에서 모였는데, 주말에 비도 적당히 내려 술 먹기 좋았다.


J는 몇 달 전 스키장에서 보드 타다 미끄러져 부딪혀 가슴에 커다란 깁스를 하고 나타났고, 고지혈증이 심했던 H는 금연 후 운동을 열심히 한 덕분에 제법 살이 빠졌다. 강릉에서 온 Y는 지난번 봤을 때보다 흰머리가 더 수북해져 가장 늦게 도착했다. 나 역시 요즘 등이 아파 도수치료받는 중이라는 최근 소식을 전하며 아직 '살아 있음' 서로 확인했다.


우리 4명은 대학 같은 과 동창이다.

모두 재수를 했고, 다들 공부에 큰 뜻이 없고 당구를 좋아해 자연스레 친해진 사이다. 시험 때면 '빨래터'라 불리는 학교 도서관 앞 쉼터에 동네 아낙네들처럼 앉아서 지나가는 여학생 중 누가 더 이쁜가를 내기하는 공동의 취미로 자주 뭉쳤다. 나와 J는 군대를 다녀와 학사로 졸업해 취직을 했고, H와 Y는 대학원에 가면서 이 '빨래터 모임'은 잠시 소원해졌지만 같은 나이의 짝을 만나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하며 다시 부부 모임으로 친해져 어느덧 30년을 같이했다.


동파육에 고량주로 취기가 건하게 돌자, 우리의 화제는 '브레이브걸스'의 역주행 이야기로 넘어갔다. 멤버 중 트렌드에 가장 둔감한 Y가 직장 부하직원에 자랑하듯 동영상을 보여줬다 분위기 싸~해졌다는 얘기로 시작해, "군인들 사이에서 인수인계식으로 퍼졌다는데 요즘 세상 참 편해졌네" 하며 힘들었던 H의 군대 경험담으로 이어졌다. 순간 "야 근데 너희 둘은 4주 훈련받고 군대 퉁쳤잖아. 6주 받고 18개월 방위하고, 8주 받고 현역 나온 우리 앞에서 참 말이 많아. 크크크" J가 짓궂게 받아친다.


그러고 보니 이성보단 본능에 의존해 하루하루 제대 날만 기다리던 어느 날, 당시 <우정의 무대)란 TV 프로그램을 위해 우리 부대로 위문공연 왔던 '코코(이혜영과 윤현숙)'는 정말 여신들이었다. 당시는 그 역주행 동영상 속 군인들처럼  맘껏 떼창 하는 분위기까진 아니었지만 마음만은 이미 무대 위를 뛰어올랐던 기억이 난다.



정주행이 답이다


'역주행' 관련 뉴스가 가끔씩 회자된다.

'같은 찻길에서 다른 차량들과 반대 방향으로 달린다'는 위험한 행위를 뜻하는 본래의 의미완 달리, 요즘 역주행은 '발매 당시에는 별 인기가 없던 또는 한동안 잠잠했던 노래가 갑자기 어떤 계기로 인기차트 순위가 급상승하는 현상'을 말한다고 한다. EXID의 <위아래>. <응답하라 시리즈> OST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트렌드가 빨리 변하는 시대라 초반에 반응이 안 오는 노래는 빨리 활동을 접고 다른 걸 미는 게 요즘 가요계 정석이라는데 <롤린>처럼 유튜브 동영상으로 이슈화되어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금세 천만 뷰를 달성하거나, <걱정 말아요 그대>와 같이 다른 사람의 리메이크로 숨겨진 명곡이 알려져 재조명받는 이런 드라마틱한 역주행 사례는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특히 지금 잘 나가지 못하는 상황에 있는, 오래 매달려도 안 풀리는 사람에게는 나도 기회가 있다는 희망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뭔가 끝까지 붙잡고만 있으면 언젠가 될 거란 막연한 기대는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대부분 역주행 사례는 물론 운이 많이 작용했지만, 노래와 가수 자체가 원래 좋았었다. '진인사 대천명'이란 옛 말처럼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먼저다. 사실 좋은 것은 초기부터 인기였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고량주 큰 거 하나에 술기운이 달아오르며, 빨래터 친구들의 얘기는 과거에서 어느덧 미래로 넘어간다.


5년 후 은퇴해 여수에서 바를 하며 여행 다니고 싶다는 J.

더 이상 일은 됐고 가진  아껴 쓰며 맘 편히 살겠다는 H.

현재 사는데 만족해 은퇴 자체를 생각해 본 적 없다는 Y.

나는 좋아하는 트롯이나 들으며 다림질하는 세탁소 주인의 소소한 행복을 꿈꾼다 했다.


정상을 향한 위험한 역주행이 아닌,

이젠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정주행 하는 여생이 되기를...

그리고 모두 건강하기를...


막잔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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