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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드형 Apr 03. 2021

우주관광 가도 면세품 살 수 있을까?

면세점의 미래는 여행 플랫폼이다

2023년 우주관광을 간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 <미래 수업>을 통해 흥미로운 뉴스를 접했다. 일본의 억만장자인 마에자와 유사쿠가 2023년 자신과 달 여행을 함께 갈 8명을 공모한다는 것이다.

일명 '디어 문(Dear Moon) 프로젝트'. 비용은 공짜이며, 선발기준은 단 두 개다. 하나는 여행을 통해 인류와 사회에 공헌할 자, 또 하나는 우주선에 동승해 서로 협력할 자라고 한다.

이번 여행은 Space X사의 우주선을 전세 내서 달까지 왕복 1주일을 다녀오는 무착륙 코스로, 1969년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 달 착륙에 성공한 후 오십여 년만에 드디어 '달 관광'을 떠나는 셈이다. 게다가 Space X사는 2024년 화성 여행도 추진 중이라고 하니 이제 우주관광은 내 생애 더 이상 꿈이 아닌 듯싶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문제는 결국 돈이다.

최초의 우주 관광객인 데니스 디토는 20년 전 러시아 우주선을 타고 국제 우주 정거장까지 갔다 왔는데
당시 2천만 달러란 큰 비용이 들었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 제프 베조스, 리처드 브랜슨 등 천재 기업가들이 앞다퉈 민간주도 우주 사업에 진출하면서 앞으로는 그 비용이 약 1% 수준인 20만 달러로 감소될 전망이다. 물론 이것도 2억 원이 넘는 큰돈이긴 하다. 하지만 서울 부동산 전세가도 자고 나면 '억'소리 나게 오르는 요즘 세상이다 보니 예전만큼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내게도 곧 기회가 오겠단 생각이다.

과거 해외여행도 이와 비슷한 단계를 거쳤다.

1938년 영국과 호주 간 항공료가 약 2천만 원이었는데 지금은 5% 수준인 백만 원대로 줄었다고 한다. 국가 간 항공여행의 비용이 줄면서 해외여행이 더 이상 부자들의 전유물이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면서 가장 성장한 산업 중 하나가 바로 면세점이다.



면세점도 지금이 터닝포인트다


나의 직장인 면세점은 코로나로 가장 타격을 입은 업종 중 하나다.

사실 2019년은 역대 최대 매출과 이익으로 입사 후 찔금 찔금 받아온 연말 보너스의 정점을 찍었다. 해외 여행객도 많았지만 중국 보따리상 덕분이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해인 2020년, 국제 항공길이 막히면서 매출이 반토막 나고 일부 매장은 문을 닫았다. 비용을 줄이려고 순환제 휴무/휴직에 들어갔고, 일부 직원들은 퇴사/이직도 했다. 이처럼 드라마틱한 추락의 1년을 보내고 지금은 다시 날갯짓을 시작하는 중이다.      


창고에 쌓여있는 일부 면세품을 통관 처리해 해외 출국 없이 국내에 판매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비행기를 타고 일본 등 인근 국가의 상공만 돌다 오는 무착륙 관광을 하면 해외여행으로 인정되어 면세 구매가 가능하기도 하다. 올해 하반기에는 코로나 단계가 심하지 않은 국가 간 2주 자가격리 기간을 없애주는 트래블 버블 협약도 기대되어 조금씩 희망이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고육책에 지나지 않는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모든 것들이 달라질 수밖에 없고 그 이전으로 돌아가길 기대하는 건 순진한 발상이다. 따라서 면세점은 지금이 터닝포인트다.


면세점은 여행(Travel)과 쇼핑(Retail)이 결합된 사업 모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면세(Duty Free)란 의미처럼 '해외 명품을 싸게 사는 곳(Shop)'으로 단순히 이해하겠지만 사업자의 입장은 좀 다르다. 한마디로 관광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해외 여행객에게 관세와 부가세를 보류해주는 '세금 비즈니스'에 가깝다. 그리고 그러한 거래가 가능한 보세판매장 운영권을 기업들에 주는 일종의 '허가업'이다. 안 그래도 비싼 명품을 세금까지 붙여 파는 백화점이나 부띠크 매장과 비교해 가격 경쟁력이 있으니 장사가 잘될 수밖에 없고, 그러니 '황금알을 낳는 거위'란 소문이 나서 모든 대기업들이 뛰어들기 위해 관세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가격 위주로만 면세점을 이해하는 건 쇼핑(Retail)이란 한쪽 면만 보는 것이다. 다른 한쪽인 여행(Travel)이란 부분이 오히려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점을 이번 코로나를 겪으면서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싸면 뭐하겠는가? 여행을 못가 살 수가 없는데...


사실 한국 면세점과 달리 해외 면세점은 세금을 깎아주는 'Duty Free' 보다는 여행객을 위한 유통이란 의미인 'Travel Retail' 모델에 가깝다. 예를 들어 홍콩처럼 아예 관세가 없는 국가도 있고 우리처럼 출국심사를 통과해야 들어가는 공항 내 Air Side에만 매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전 세계의 여행객들이 그 나라에 여행을 와서 먹고, 자고, 놀고, 이동하면서 쇼핑하는 모든 것들이 다 Travel Retail인 것이다. 꼭 글로벌 명품만이 아닌 그곳에서만 살 수 있는 특산품, 이용할 수 있는 여행 관련 모든 서비스가 오히려 더 중요한 상품일 수도 있다.

  

면세점의 미래는 결국 여행 플랫폼이다.


백화점, 마트와 달리 여행객만이 구매할 수 있다는 차별성, 그리고 직구/역직구가 활성화되면서 명품에 대한 가격 경쟁력 역시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서 면세점은 여행객을 위한 '플랫폼'으로 변해야 한다고 믿는다.

플랫폼 사업 모델의 핵심은 고객이 자주 들어와 오래 머무르는 거라고 한다. 코로나가 끝나고 나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여행일 것이다.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서둘러 비행기표를 끊고 호텔을 예약하고 맛집과 관광지를 검색하고 보복적 쇼핑을 할 것이다. 그런 시절을 대비해 글로벌 Top에 있는 한국의 면세점들은 전 세계 여행객의 트래픽을 끌어들이는 여행 관련 토털 서비스 사업자로 적극적으로 변신하고 도전해야 할 것이다.


'Duty Free'란 직역하면 의무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어서 빨리 마스크나 사회적 격리의 Duty로부터 Free해지는 그날이 오길 간절히 희망한다.

 

그리고 우주여행 시대가 되면

우주 정거장에 면세점(Travel Retail)이 생기는 날 역시 희망한다. 우주엔 국가란 개념이 없으니 우리를 괴롭히는 세금은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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