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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드형 Mar 27. 2021

봄, 꽃, 그리고 정체성

명품 마케터란 직업도 정체성이 생명이다

네 정체가 무엇인고?


출근길에 보니 봄꽃들이 하나 둘 피었다.
겨우내 가지만 앙상할 땐 몰랐는데
산수유, 목련, 벚꽃... 슬슬 그 '정체'가 드러나는 게다.

정체성(Identity)
변하지 않는 본질, 독립적 존재란 의미로 

마케팅에서 BI(Brand Identity)는 네임, 로고, 컬러 등 보이는 것 외에도 상품 차별성, 기업 철학 등 무형적인 것을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이다. 따라서 마케터는 이런 BI 요소들을  버무려서 고객들에게 일관되게 노출해줘야 봄꽃들처럼 오래 사랑받는 브랜드로 그 생명력을 유지시킬 수 있다. 만약 어쩌다 신이 실수해서 노란색 진달래나 보라색 개나리가 보이이상하지 않겠는가?

물론 정체성과 달리 이미지는 계속 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 피는 벚꽃은 10년 전, 20년 전 것과 본질은 같지만 내게 주는 그 느낌은 많이 달라졌다.
(사실 현 직장으로 이직 후 정신없이 살았던  년 전부터 기억은 거의 없다)


서른 , 벚꽃의 이미지는 영화 두 편으로 압축된다.

<4월 이야기>에서 대학 신입생이 된 '우즈키'가 도쿄로 이사 오는 날 비처럼 쏟아지던 벚꽃들과 <봄날은 간다>에서 막 연인과 이별한 '상우'의 쓸쓸한 모습 뒤로 처연히 보이던 벚꽃길이다. 한마디로 청춘과 사랑의 꽃이다.


오십이 되어 바라보는 벚꽃은 뭐랄까... 약간 슬프고 덧없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우아해 보이지만 '벚꽃 앤딩'이란 제목처럼  절정이 너무 짧다. 애국심 강한 '노노 재팬' 운동가는 아니지만 소박하면서도 역경을 딛고 끈질기게 피는 무궁화가 오히려 더 정이 가는 걸 어쩌랴.



마케터도 정체성이 생명이다


브랜드 정체성은 명품 마케팅의 심장이다.

디자이너의 독창적 감성과 장인의 품질에 대한 집요함이
녹아든 제품과 서비스라는 본질이 생사를 좌우한다.


그다음 중요한 것이 

"모두가 알지만 아무나 못 사는" 이미지 관리인데 예를 들면 높은 가격대 유지는 물론, 할인이나 덤 같은 판촉보다는 잡지나 TV를 통한 광고를 선호한다. 그리고 고급 백화점이나 자체 플래그십 매장에서만 판매하는 유통전략통해 고객의 경험을 극대화한다.
(프랑스에서 배운 'Luxury Brand'적어도 그랬다)

그런데 최근 명품 마케팅이 변하고 있다.
가성비와 가심비를 중시하는 MZ세대가 주 소비층으로 대두되면서, 그들의 놀이터인 SNS 공간을 통한
디지털 마케팅이나 모바일 쇼핑이 대세가 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 대유행으로 급격히 비대면 사회로 전환되면서 그 변화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전통적인 4P 전략(Product, Price, Promotion, Place)만을 고집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콧대 높은 명품 브랜드들의 정체성 고민이 커지는 이유다.

사실은 마케터로서  정체성도 문제.

면세점 이직  나의 직무는 브랜드 매니저였다.

정확히는 호텔 브랜드 담당자였다.

당시 우리 회사는 호텔이 주 사업영역이었고 면세점은 사실상 부대사업이었다. 매출 규모는 서로 비슷했지만 이익이 거의 안나는 호텔이 회사의 얼굴마담이라면, 면세점은 실제 먹고 살 돈을 벌어주는 家長 역할을 했다.


공항 면세점에 진출하고 중국 여행객이 급증하며 면세점이 성장하다 보니 BI 이슈가 생겼다. 면세점 의 특성상 해외 여행객들 대상 "명품을 세금 없이 싸게 살 수 있다"는 것이 마케팅의 핵심 메시지인 반면, 고급 호텔과 동일한 BI 디자인을 쓰다 보니 자칫 경쟁사 대비 가격이 비싸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어 적극적인 노출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결국 호텔의 럭셔리한 이미지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 이와 구별되는 면세점만정체성을 반영한 새로운 로고를 개발하는 것으로 이를 해결했다.


BI가 바뀌고부터 면세점은 가격 중심의 적극적 마케팅을 벌여 더욱 고성장했고 회사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주 사업이 되었다. 이때부터 나의 직무는 호텔 브랜드 관리에서 면세점 부문의 신사업 기획, 온라인 영업, 글로벌 마케팅 등으로 계속 변경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Luxury Brand Manager일까 아니면 Travel Retail Marketer일까" 하는 직업적 정체성의 고민이 생겼고, 지금은 결국  둘을 잘 버무려 "명품이라는 業본질을 이해하고 이를 온라인과 글로벌 마케팅 실무를 통해 현장 실행력까지 갖춘 명품 마케터"라고 재정의하기로 했다. 

브랜드처럼 마케터오래가려면 정체성 중요하다.
산업과 시장의 환경에 따라 이미지가 변하며 성장하 다양한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통해 내 직업의 본질적 성숙함을 찾아야 그 수명이 길어진다.


지금 내 직업이, 하는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헷갈려하며 동기부여가 안 되는 후배들에게 얘기해 주고 싶다.


추운 겨울 동안 뿌리와 가지 속에 숨어서 자라고 있지만 봄이 되면 밖으로 피어나 또렷한 실체를 노출하는 꽃들처럼 일관성을 잃지 않으려고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그 정체성이 자연스레 드러날 것이라고.


명품 마케터도 정체성이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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