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늙는대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나이가 들면,
몸이 쇠하듯 말도 늙어서
두서없는 얘기를
알아들을 수 없는 발음으로
장황하게 펼치다 대충 얼버무리기 쉽다고.
(내가 요즘 딱 그런데...)
커뮤니케이션 강의를 하던 그녀답게
해결책까지 제시한다.
낭독을 해봐
그날부터 아내와 난
책 하나를 골라 매일 아침 10분씩
소리 내 읽고 녹음하는 낭독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벌써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처음엔 초등학교 국어시간 읽기처럼 느껴져
무척 쑥스럽기도 했지만
자꾸 하다 보니
혼자 눈으로만 보던 좋은 글을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재미가 솔솔 하고
낯설던 내 목소리도 점점 익숙해져
이젠 라디오 DJ 멘트처럼 자연스럽게 들린다.
게다가 아내가 주는 피드백으로
글을 말로 전달하는 요령도 조금씩 생기는 듯하다.
긴 문장을 적절하게 끊어 읽고
받침 많은 단어는 천천히 또박또박 발음하고
여러 사람의 대화는 각자 톤을 달리해 구분하고
감탄사는 최대한 감정을 실어서 등등
낭독의 가장 좋은 점은
책의 내용이 훨씬 머리에 잘 들어온다는 거다.
최근에 읽은 김훈의 <허송세월>에
얼마 전까지 내가 살았던
일산 호수공원을 저녁 산책하는 부분이 나온다.
깊이 내려앉은 해가
빛과 색을 모두 거두어들이고
젊은 어머니들이
노는 아이들을 핸드폰으로 불러들이면
나는 집으로 돌아간다.
또 하루가 노을 속으로 사위어 간다.
내가 작가가 되어
혼자 보기 아까운 그림 같은 그 풍경을
독자들에게 하나하나 얘기해 주는 느낌이다.
낭독은
독서의 새로운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