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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드형 Apr 21. 2021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

있을 때 잘하란 말이다

여왕의 옆자리가 허전해 보인다


필립공이 100세(1921~2021)로 별세했다.
제국주의가 끝나가는 시기에 왕가에서 태어나 어려서 군주제의 쇠락을 보며 자랐고, 2차 세계대전에 영국 해군 장교로 참전해 파시즘, 나치즘, 일본 군국주의와 싸우다 냉전이 시작할 무렵 여왕과 결혼해 필립공이 되었다. 그리고 디지털 세상, 코로나가 한창인 이 시기에 세상을 떠났다.

거대한 현대사를 살아낸 그의 죽음 소식에 '한 시대가 간다'는 느낌이 드는 건 비단 나뿐일까? 여왕의 남편이란 자리, 편하진 않았으리라

아무리 지금은 여성 상위시대라지만, 솔직히 우리 아버지나 내 세대 남편들은 한때라도 남성 중심주의 시대를 살아봤다. (아들과 비교하면 정말 복 받은 세대다) 그래서 가끔씩 뉴스로 접하는 '여왕의 남편'으로서 그의 모습이 썩 좋게만 보이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늘 한 발짝 물러서 있으면서, 스포트라이트 한번 받지 못하는 그 인생이 불쌍하다 생각한 적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의 자세나 표정은 늘 당당했고 모든 걸 달관한 사람처럼 여유로웠다. 생을 마감할 때까지 품위와 품격, 책임과 의무 같은 단어들이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자칭 애처가인 나로서는 아마도 '여왕'이라는 힘든 직업을 가진 '아내'를 지켜주고픈 사나이 순정이지 않을까 싶다. 누구에게도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는 그녀가 유일하게 믿고 기댈 수 있는 나무 같은 존재 말이다. 나 역시 결혼 22년 차이다 보니 이제는 친구처럼 함께 살아가는 아내에게 그런 존재이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씩 한다.



있을 때 잘하자


어머니의 최애 TV 프로그램 <아침마당>에 조영남이 나와 전처인 윤여정에 대한 얘기를 해서 화제라 한다.


영화 <미나리>로 강력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며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그녀에 대해 그는 자신이 바람을 피워 이혼했고 미안하다고 했다. 아직도 그녀가 나오는 영화나 TV 프로그램을 찾아본다고도 했고, 이혼 후 미련이 남아 한때 꽃을 몇 번 보냈다 혼쭐이 난 에피소드도 공개됐다. 후회한다는 느낌이다.


나와 아내는 인간적으로 그를 좋아하진 않지만 솔직히 그의 목소리와 노래를 좋아한다. 편안하면서 자유롭게 들린다고 할까? 화가로서 그의 재능도 인정한다. 비록 5년 전 대작 논란으로 송사에 시달리긴 했지만 예술가로서 감각과 감성을 충분히 지녔다고 본다. 이런 영혼을 지닌 사람은 사실 책임이나 의무가 동반되는 결혼을 굳이 하지 않고 비혼주의자로 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랬으면 일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근사한 가수, 화가, 작가로 멋지게 늙어가는 모습이 부러웠을 수 있을 텐데... 많이 아쉽다.


여왕의 남편으로 조용히 평생 외조만 하다가
명예롭게 생을 마감한 필립공.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다 이혼해

성공한 아내를 보며 뒤늦게 후회하는 조영남.


누구의 삶이 좋은 건지는 각자 생각이 다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나이가 들수록 영원히 내편을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라는 거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내 곁을 떠났을 때

그 자리는 참 클 수밖에 없다는 거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다.

(어딜 봐? 바로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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