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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드형 Apr 25. 2021

이 사람이라고 확신하는 순간

About marriage

저 결혼해요


봄이 되니 청첩장을 가져오는 후배들이 슬슬 생긴다.

비혼주의자가 늘고 있는 요즘, 안 그래도 코로나로 모두가 결혼을 미루는 바람에 출산율까지 급격하게 줄었다는 뉴스를 자주 접해서 그런지 회사 내 예비 신랑이나 신부를 보면 반갑다.


청첩장을 열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건 날짜다.

축의금만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혹시라도 잊을까 봐 캘린더에 메모해둔다. 그다음 시선이 가는 곳은 'ㅇㅇㅇ와 ㅇㅇㅇ의 아들 XXX' 같이 부모님이 누군지다.  나도 스무 살 넘은 자식이 있다 보니 더 이상 일처럼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일 게다. 그러고 나서 초대의 글을 찬찬히 읽는다. 대부분 "평생의 짝을 만나 잘살겠습니다" 요지인데, 문득 '언제 이 사람이라 확신했을까?' 궁금해질 때가 종종 .


영화 <어바웃 타임> 보면,

주인공 메리의 그 유명한 결혼식 장면이 나온다.

신랑이 좋아하는 노래인 '지미 폰타나'의 <Il Mondo>가 낭만적으로 흐르며 교회 문이 열렸을 때, 빨간 드레스를 입고 수줍게 웃고 있던 신부(레이첼 맥아담스)의 모습은 정말 너무나 사랑스럽다. 내 인생 최고의 로맨틱 코미디로 꼽는 이유 중 하나다.


처음 데이트 한 날, 두 사람은 함께 멋진 밤을 보내고 메리의 집에서 동거에 들어간다. (사실 팀은 그전에 메리를 우연히 만난 적이 있지만 몇 번의 시간여행 끝에 마침내 그것을 필연으로 만들었) 어느 날,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잠깐 당황하지만 '함께 지내는 사이'라고 당당히 팀을 소개하는 메리. 그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아직 연인 단계였다.


팀이 메리와 결혼을 결심하는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첫사랑 샤롯(마고  로비)의 유혹을 받는 순간이다.

샤롯은 과거 팀의 적극적 구애에도 '친구 사이'로만 철벽 방어를 해 그에게 연애에 대한 자신감을 잃게 한 섹시녀로, 남자라면 그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평생 잊지 못한다는 첫사랑이 아닌가? 그러나 팀은 그녀의 방문 앞에서 그 순간 메리를 떠올린다. 그리고 곧장 달려가 잠자는 메리를 굳이 깨워 청혼을 한다. 이때 팀의 표정은 "평생의 짝을 드디어 찾았다"는 확신과 기쁨에 가득 차 있다.



도박과 투자 사이


결혼은 말할 필요도 없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터닝포인트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이후 삶이 풀리기도 꼬이기도 한다.


문제는 부부로 살아보기 전에 미리 알 수 없는 게 너무 많다는 거다. 연애할 때야 서로 이쁜 모습, 좋은 성격만 보여줄 수 있지만 (그래야 하지만)  막상, 같이 '결혼 생활'을 하다 보면 화장 지운 민낯이나 숨겨 온 나쁜 습관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사실 이런 거야 신혼기를 거치면서 적응하고 맞춰가면 되는 귀여운 수준이고, 정말 심각한 것은 어느 정도 세월이 흘러야 알게 되는 '가치관' 또는 '인생관'의 차이다.


예를 들어 재테크만 하더라도, 각자 살아오면서 갖게 된 경제관념이 다를 수 있고 그런 상황에서 서로 목표로 하는 부의 수준이나 돈을 벌고 쓰는 방식에 대한 생각 역시 다를 수 있다. 결혼할 때야 무리해서 집을 살지 아니면 전세나 월세로 시작할지 정도의 견해 차일 수 있지만, 나중에는 먹고 살만큼만 벌고 맘 편히 사는 것과 최대한 부자가 되어 자녀나 사회에 베풀며 사는 것으로 의견이 갈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 경우, 부부로서 남은 삶이 순탄하긴 힘들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요즘은 결혼하더라도 혼인신고는 최대한 늦게 한다고 한다. 부동산 청약 때 유리하다는 얘기도 있지만, 결국 이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유예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건 최소한의 리스크 관리일 뿐이고, 결국 결혼 전 최대한 내 '평생의 짝'을 알아보는 게 중요하다.


내 경우는 사실, 이 확신의 순간이 너무 심플했다.

아내와 1년 정도 사귀었을 무렵,

병 중이셨던 할머니를 함께 뵈러 간 적이 있다.

그때 아내를 보신 후 얼마 남지 않은 기력을 다해서 귓속말로 해 주신 말씀이 "밝아서 참 좋다"였다. 그리고 한 달 후 돌아가셨다.


생을 마치기 전, 사랑하는 손자에게 남기신 마지막 그 말씀이 내게는 일종의 'Confirm'이었고 확신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22년 부부로 살아 보니 그 말이 맞았다.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환하게 웃을 줄 알고

남들이 어려워하는 일도 빠르게 솔루션을 찾아내고야 마는 긍정과 실행의 아이콘이다.

지나치게 진지할 때가 많고, 실수를 안 하려고 생각만 하다 실기하기 일쑤인 내겐 딱 맞는 평생의 짝이란 걸 살아 보니 알겠다. 당시는 정말 몰랐다.(할머니 고맙습니다)


결혼은 충분한 사전 정보 없이 한다는 측면에서

투자보다는 도박에 가깝다. 남은 인생을 다 걸고 배팅한다고 볼 때 가장 위험한 도박이다. 그래서 인생의 도박을 해서 지금까지 나름 성공한 선배로서 두 가지 조언을 해 본다.


첫째, 동거를 추천한다.

지금은 많아졌다지만, 프랑스 등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여전히 부정적 시각이 있는 것 같긴 하다. 나는 다행히 양가 허락을 받고 결혼 전 1년을 같이 살아 봤는데, 연애만 해서는 모르는 것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상대방뿐만 아니라 결혼생활 자체를 미리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대박은 아니라도 쪽박은 면할 수 있다.


둘째,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그녀나 그도 나에게 큰 배팅을 한 상황이다. 내가 그랬듯이 상대방 입장에서도 이 사람이란 확신을 주는 뭔가를 나도 하나쯤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언젠가 아내에게 물었더니 나는 그게 '성실함'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행히 그 부분에 대한 믿음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은 듯하다. 어차피 서로 Win-Win 해야 지속되는 게임이다.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지만,

결혼이 무모한 도박이 아닌 전략적 투자라는 걸

잊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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