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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드형 May 03. 2021

동양화 속 학자와 어부 이야기

<자산어보>

시작은 최백호였다


도무지 깊이를 알 수 없는

그의 시 같은 목소리 가득한 뮤직비디오를 통해서

영화 <자산어보>를 처음 알았다.

먼 아주 멀리 있는,
저 바다 끝보다 까마득한
그곳에 태양처럼 뜨겁던 내 사랑을 두고오자.

푸른 바람만 부는,
만남도 이별도 의미 없는
그곳에 구름처럼 무심한 네 맘을 놓아주자.

아름다웠던 나의 모든 노을빛 추억들이
저 바람이 흐트러지면
난 우리를 몰라...
                                                <바다 끝> - 최백호 -


서로의 스승이기도

서로가 벗이기도 했던

학자와 어부의 이야기였.

배운대로 못살면 생긴대로 살아야지

흑백 영화는 참 오랜만이다.


동양화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준익 감독의 미장센도 깔끔하고

스토리 역시 군더더기가 없다


주자의 성리학에 빠져

서양의 종교와 학문에 눈 감고 귀 닫은 조선 후기.

흑산도로 귀양 온 정약전(설경구)이

양반의 삶을 꿈꾸는 창대(변요한) 개인교사가 되어 '대학'을 가르치고, 대신 '바다'를 배워 책을 쓴다.


거대한 돗돔을 잡아 머리에 이고 온 장면은

<미래소년 코난>을 오마주한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정약전이 죽은 뒤 상갓집에 찾아와 눈물 흘리는 장면에서는 <시네마 천국>의 토토의 모습이 살짝 스치기도 한다.


마지막 흑산도로 돌아오는 장면에서

흑백 화면이 컬러로 바뀐다.

"배운 대로 못살면 생긴 대로 살아야 한다"는 창대의 달라진 세계관과 함께 바야흐로 실학(實學)의 르네상스가 열렸음을 의미하는 거라 느꼈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죽은 사람에게까지 붙는 세금이란 참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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