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솥 수리 편
진단
멀쩡하던 쿠쿠밥솥이
'ECO'라는 메시지가 뜨면서 일을 안 한다.
산 지 얼마 안 된 모델인데 벌써 두 번째 고장이다.
검색해 보니
뚜껑 내부의 전선이 끊어졌을 때 발생하는 현상이고
자가수리 방법도 소개되어 있다.
고쳐볼까... 하다가
전문가도 아닌데 잘못 손댔다 더 망가지니
서비스센터에 다시 가자는 나를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아내가 눈썹을 치켜올린다.
"대충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불안감이 몰려온다)
수술
다음날 이른 아침,
부엌에서 뚝딱거리는 소리가 난다.
성격 급한 아내는 밥솥을 기어이 뜯고 있다.
유튜브 영상을 보며
여기저기 숨겨진 나사를 풀더니
뚜껑 바깥쪽 신호추와 잠금장치를 분리하고
마침내, 최대 난코스인 덮개를 떼어내는 데 성공한다.
난 수술실 전공의처럼
집도의인 아내의 지시에 따라
분해한 나사들과 부품들을 순서에 맞게 정리하고
드라이버와 칼 등 각종 도구들을 챙겨 건네기 시작한다.
톱으로 잘라낸 뇌 속처럼 복잡하게 얽힌 전선들 중
끊어진 노란 전선을 찾아내 피복을 벗겨 잇고
절연 테이프 대신.
다 쓴 고무장갑 일부를 도려내 붙여
일반 테이프로 감은 후 능숙하게 수술을 끝내는 아내.
"이제 조수가 잘 닫고 마무리해 봐"
실습 기회를 주는 교수님 흉내를 내며 의기양양하게
드라이버를 내게 건넨다.
(칫, 다시 역순으로 조립하면 되는 거 아냐)
보란 듯이 나사를 돌리는데
뚜껑 안쪽 둥근 판을 고정하는 5개 나사 중 하나를
실수로 뚜껑 속으로 빠뜨려버린다. (이런)
손가락으로 빼내려 하면
자꾸 더 깊이 들어가 버리는 야속한 나사.
밥솥 채 들고 흔들어도 도통 나올 생각을 않는다.
그것도 제대로 못하시나 싫은 소리들을 생각하며
다시 해체하려는데
아내가 씩 웃으며 드라이버를 돌려받는다.
괜찮아, 대세에 지장 없어!
(그냥 4개 상태로 봉합해 버린다)
예후
코드를 꼽고
취사 버튼 누르니
반가운 멘트가 흘러나온다.
쿠쿠가 밥을 시작합니다~
어렵게 지켜온 공대생으로서 자존심은 구겼지만
다시 한번 분명히 밝힌다.
나는 전기공학이나 기계공학이 아닌,
재료공학을 전공했다고...
그리고, 나 땐 이런 첨단기술의
전기압력밥솥 없었다고...
(아내의 눈빛이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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