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끝에서 삶은 시작된다

by 본드형

종묘에 왔다.

30년 넘는 서울살이 동안 처음이다.


종로3가역에 내려
귀금속 골목을 지나자마자 바로인 이곳은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지만


막상 와보니,

수백 년 된 커다란 고목들 사이로

고즈넉한 산책길이 나 있는 도심 속 공원에 가깝다.


태조에서 순종까지 오백 년 동안


금수저로 태어나

부러울 게 없는 환경에서 자라

최고의 부와 권력을 누리는 왕의 삶이었지만

궁 안에 갇혀 엄격한 법도를 지키며
한 개인으로서 자유의 삶을 포기해야 했던 그들은

죽는 순간, 어떤 기분이었을까?


아쉬웠을까

두려웠을까

아니면... 후련했을까


멋진 배우 유태오가 한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문득 떠오른다.


독일에서 자라며

사춘기 때 대홍수를 겪고 난 후
죽음이 바로 문 앞에 내일 올 수도 있다는
인생의 허무함을 일찍 깨달았어요.


그래서 지금 죽더라도

순간이 두렵거나 후회가 안되게

삶을 완전하게(to the fullest) 살기로 했죠.


진짜 맛있게 잘 익은 복숭아 하나를

한 입에 확 베어 먹은 것 같은,

인생의 그 모든 달콤함을 쭉 빨아먹은 것 같은

그런 삶 말이죠.


삶의 끝인 죽음에서

삶은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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