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서울> 삐딱하게 보기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멀었고
오늘은 한편 남았다
드라마 <미지의 서울>을 정주행 중이다.
아내와 나의 당초 계획은 체력 안배를 위해
12편을 금토일에 걸쳐 4편씩 나눠보기로 했는데,
늘 그렇듯 중간에 끊지 못하고 토요일 어제까지
11편을 끝냈다.
'1인 4역'을 해내는 박보영의 탄탄한 연기력,
등장인물들의 뚜렷한 캐릭터와 매끄러운 서사 구조,
결핍과 장애를 가진 이에 대한 깊고 따뜻한 묘사가
잘 투영된 웰메이드 성장 스토리임이 분명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직장 세계와는 다소 동떨어진
낯선 설정들이 간혹 눈에 띄었다.
굳이 따지자면,
달리기 선수를 꿈꾸다 부상으로 백수가 된
쌍둥이 동생 '미지'가 주인공이지만
흙수저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대학은 나왔지만
고시 실패 후 기업에 들어가서 가장의 노릇을 하는
쌍둥이 언니 '미래'에 더 마음이 갔다.
특히 그녀의 직장인 '한국금융관리공사'는
지난 30년 동안 내가 겪었던 회사생활을
자꾸 떠올리게 했다.
핵심부서의 포스가 나는
'기획조정국' 산하 '기획전략팀'이란 조직 명칭부터
팀장 -> 수석 -> 선임으로 이어지는 직급 체계,
'데이터 분석가'라는 외부 전문 계약직까지...
3개월 전 내가 퇴사한 마지막 회사와도 비슷했다.
하지만, 처음 이해가 안 간 건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에 대한 조직원들의
태도와 반응이다.
아무리 보수적인 공기업 문화라지만
피해자인 막내 여자 선임을 그 많은 부서원 모두가
대놓고 왕따 시킨다는 건
요즘 세상에 불가능한 일 아닐까?
<블라인드>와 같은 온라인 플랫폼에
누군가 벌써 올려서 각종 노동단체나 여성단체가
불같이 달려들었을 것이다.
또 하나 내 눈을 끌었던 건
사무실 좌석이 팀장 포함 개인별 파티션으로 나뉘어
모두 상대방 등을 바라보고 앉았다는 점이다.
무슨 콜센터도 아니고...
사수-부사수처럼 서로 관련성 있는 직원끼리는
같은 파티션 안에 나란히 또는 마주 보고
앉는 것이 일반적 아니던가.
내 첫 번째 회사도 공기업이었는데
팀장과 마주 보고 사수와 나란히 앉다 보니
막내인 나로서는 그들의 눈길을 피하느라
늘 가자미가 되었었던 기억이 있다.
마지막으로 분석 전문가라는 외부 계약직에게
직원들이 아부를 떨며
자신의 업무를 부탁하는 모습이다.
어떤 자료나 데이터를 다루는지 모르겠지만
다들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조직일 텐데
본인들은 며칠 씩 걸릴 일들이
단 몇 시간에 가능하다면서 (투덜대면서도)
먼저 해달라고 줄을 서는 장면을 보며
'을'인 계약직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10시간 넘게 마라톤 하듯 드라마를 보며
직장생활 경험자랍시고
이러쿵저러쿵 삐딱하게 오지랖질을 하는 중에
아내가 한마디 한다.
"저 계약직 딱 AI스럽게 생겼네. 표정도 없이..."
그러고 보면
AI와 로봇이 판치는 미래엔
문제는 많지만 그래도 인간 냄새가 나는
드라마 속 회사 생활이
오히려 전설처럼 남을지도 모르겠다.
현실적 직장인에서, 꿈꾸는 직업인으로
은퇴 준비에 마음이 급한 나는
미래 할머니의 조언이 이렇게 들린다.
어제는 반복되고
내일은 금방이고
오늘은 이미 다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