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집안일
아침에 예비군 훈련 가는 아들을 배웅하는데
푸석한 긴 머리에 구겨진 군복 차림이
영 자세가 안 나온다.
현역일 땐,
부대의 얼굴인 위병이라며 칼 같이 다려 입더니
이젠 작업복인양 옷장 구석에 있던 그대로다.
하긴 나도 그랬으니까...
군대에서 배운 다림질을 다시 시작했던 건
회사 들어가 매일 입어야 할
정장용 셔츠 때문이었다.
총각 시절엔 매번 세탁소에 맡겼는데
결혼하고 씀씀이부터 줄이자는 아내의 말에
단골 세탁소 아저씨의 다림질 법을 눈으로 익혔다.
다림질은
신혼 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해오고 있는 유일한,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집안일이다.
회사 다닐 땐 주말마다 아내가 빨아 준 셔츠를 모아
스팀다리미와 X자로 펴는 다리미대를 꺼내
음악을 들으며 다림질했는데
그 시간만큼은 불멍이나 물멍처럼
잡생각이 없어지고,
구김 없이 빳빳하게 잘 다려진 하얀 셔츠를 보면
일주일간 복잡했던 머릿속이 싹 비워진 느낌이었다.
셔츠 한 장 다리는 데 보통 5분 정도가 걸리는
나의 다림질 법은 이랬다.
일단, 뒤판부터 시작해
윗부분을 접어 먼저 다려야 각이 잡힌다.
다음, 앞판을 다릴 때는 단추와 단추 사이를
다리미의 뾰족한 부분으로 섬세하게 터치해야 한다.
메인은 소매인데,
팔 부분은 빨래 말린 후 구김이 많이 생겨
봉제선 기준 양쪽을 잡아당겨서 꼼꼼히 펴야 한다.
마지막, 칼라 양 끝을 꾹꾹 눌러 다림질한다.
흐리거나 비 오는 날이 좋은 건
습기가 많아 굳이 스팀을 안 써도 술술
다림질이 잘되기 때문이다.
노동요는 느린 트롯.
특히, 비 오는 날 최애곡은 <보슬비 오는 거리>다.
여러 가수가 리메이크해 불렀지만
조영남이 부른 흘러간 옛 노래 버전이 최고다.
마냥 틀어 놓고 따라 흥얼거리고 있으면
세상 욕심 없는 동네 세탁소 아저씨가 된 기분이다.
https://youtu.be/IQw4D1dUzDg?si=QY30_0evgFoQUoU1
무라카미 하루키도 젊은 시절,
셔츠는 세탁소에 맡기지 않고 직접 다려 입었는데
주니어 워커&올스타스의 솔뮤직을 틀어 놓고
대여섯 장씩 한꺼번에 다림질을 해치웠다고.
셔츠 한 장을 십 년 가까이
빨고 말리고 다림질을 하다 보면
거기에 나름대로 '대화' 같은 것이 생겨난다.
ㅡ <잡문집>, '올바른 다림질 법' 中 ㅡ
얼마 전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상갓집 갈 일이 생겨 셔츠 한 장을 다리는데
십 년 가까이 입었던 터라 등판과 소매 부분에
다림질 선들이 또렷이 보였다.
뜨거운 스팀이 지날 때마다
보톡스 맞은 듯 하얀 주름을 펴는 셔츠가
오랜 친구처럼 느껴져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내 주름살만큼
너도 많이 늙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