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추하다.'
준의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준은 캡틴을 흠집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였다. 도대체 왜, 저렇게 캡틴을 이기려 애를 쓰는지.
"말 가려서 해. 지나치잖아."
"너한테 잘해주는 거 보면 뻔하잖아."
"그래서? 그럼 너한테는 어떠셨는데."
"여기서 꼬신 사람만 몇 명인 줄 알아? 셀 수도 없어. 사귄 사람도 꽤 되고."
"그런 이야기를 나한테 말하는 이유가 뭐야? 왜 남의 이야기를 함부로 해."
준은 또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얼굴이 붉어졌다. 스스로도 창피함을 아는 것인지.
"근데, 너는 모르잖아. 내가 얼마나 불안했는지."
"뭐?"
준은 갑자기 알 수 없는 말들을 내뱉기 시작한다. 담배 이야기도 미처 끝내지 못했고, 내 질문에도 어떤 답조차 해주지 않는다. 왜 준이 피해자인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그게 또 무슨 소린데. 넌 지금 핑계, 변명만 대고. 이젠 알 수 없는 말을... 하..."
한숨을 내뱉는다. 공기가 탁하다. 숨 막히게 찬 공기가 호흡에 걸린다. 내뱉을 때 마저 차가워 소름이 돋는다. 준은 이내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인다.
'뭐가 그렇게 분해서...'
스스로 생각을 한대도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 준은 본인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분노를 참기 위해 노력하는 듯 보였고. 나 역시 더 이상 준의 행동을 지적하지도 못하고, 준의 기분을 걱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왜 그래, 도대체..."
내 말에 준은 분한 듯 입술을 꽉 깨물 뿐이었다. 나는 답답함이 들었지만, 굴욕적인 준의 표정에 말을 더 이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준아, 더 이야기할 상황이 아닌 것 같다."
그깟 정이 뭐라고 난 이 관계를 또 미뤄두었다.
-
결국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또 제자리걸음이다. 요즘 준과의 대화가 항상 그랬다. 실망하고, 또 실망하는 것의 반복. 웨딩홀에 들어오곤 매일 불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 뿐이다. 여전히 준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준은 캡틴과 경쟁을 하는 사람처럼 굴었으니까.
"결국 헤어지자고 말하지도 못했지"
나 역시 방에 들어와 혼자 말을 내뱉어본다. 준의 무너진 표정을 보고 쉽게 이별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일말의 정이었다. 이건 나의 우유부단한 성격 탓이었다. 쉽게 결정할 사안도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별은 얼마나 어려운지. 어떻게 그렇게들 쉽게 헤어지는지. 난 그게 참 궁금했다.
"헤어지는 순간은 얼마나 더 큰 상처를 받아야..."
뒤이어 준의 말을 떠올렸다. 캡틴이 여미새라던 그 중얼거림. 도대체 준은 왜 그런 말을 내뱉었을까. 난 그 대답도 쉽게 정하지 못했다.
캡틴은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 누구에게나. 오늘 그리 무례히 굴던 준에게도 화 한 번 내지 않았으니까.
"어른스러운 거 같은데..."
내가 생각하던 어른이 있다면 캡틴 같은 사람이었다. 적어도 나는 내가 본 대로 사람을 바라보고 싶었다. 캡틴은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싶었다. 의지할 곳 없던 웨딩홀에서 유일하게 이름을 알려주고, 이야기를 들어준 것은 남자친구인 준이 아니라 캡틴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왜..."
준의 입장을 생각해 본대도 답이 나오진 않는다. 설령 캡틴이 그런 사람이래도 누가 캡틴을 비난할 수 있을까.
집에 돌아오곤, 한참뒤 준이 장문의 연락을 보내왔다. 장황한 문자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한 줄을 혼자 대사처럼 곱씹어본다.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날 만날 때는,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고..."
글 하나하나 눈에서 흩어지며 사라진다. 그렇게 긴 글에서 내가 겨우 읽어낸 것은 고작 저 한 줄이다.
나는 과연 누구를 믿고 싶은 걸까. 시야를 가린다. 그날의 담배연기처럼 뿌옇게 물드는 시야, 기침하는 나. 한숨조차 탁한 이 공기. 믿고 싶지 않은 말, 믿을 수가 없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