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
"만나자고 해줘서 고마워."
"아냐, 우리 요즘 제대로 대화해 본 적도 없었으니까."
그 연락을 끝으로 준과의 약속을 잡았다. 며칠이 지난 뒤엔 카페에 모였다.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기에 나 역시 힘이 넘치지 못했고. 준도 힘없는 모습으로 카페에서 자리했다.
"학교는 잘 다녀왔지?"
내 말에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는 준. 오랜만에 마주 앉은 준의 표정은 어둡고. 준과 나는 꼭 이별을 앞둔 사람처럼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정적이 길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를 비집고, 내가 해야 할 말을 던져냈다.
"난 잠 못 자는 거 말고는 괜찮았어."
"... 잠을 못, 못... 자서 어, 어떡해. 몸은 아직도, 아파?"
오랜 정적, 준은 말을 고르고 골라 거우 내뱉기를 반복했다. 준은 긴장되는 순간에 말을 더듬는 습관이 있었고, 오늘도 띄엄띄엄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래, 고백하던 그날도 이렇게 말을 더듬었었지.'
준이 내게 고백하던 그날은 1학년을 마친 겨울이었다. 꽃 한 송이를 들고 와, 떨며 더듬더듬 말을 건넸었다. 마음이 아픈 것은 그때의 준은 생기가 넘쳤다는 것이고, 지금의 준은 많이 작아졌다는 것.
내가 부끄러움에 대답을 빨리 하지 못하고 망설이자 준은 슬픈 표정으로 날 응시했고. 나는 고민 끝 준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때, 표정이 확 풀어졌었지.'
최근 나는 더 이상 준과 등교를 같이 하지 않았다. 몇 차례 준이 내게 등교를 같이 할 것인지 물었지만 나는 번번이 고개를 저었다. 준의 걱정하는 말에 나는 마음 한구석이 찔리듯 아픈 것도 같았다. 그러나 나는 덤덤히 말을 이어간다.
"... 오늘은 푹 잘 수 있을 것 같기도 해."
"... 정, 정말? 다, 행이다"
준은 내 말을 하나하나 되새기는 기분이었다. 오래 공상하고 멍해지는 준을 보니 나는 괜히 마음이 아파왔다. 준은 지금 고백하던 그 순간보다 더 작아져있었다. 나는 힘겨운 말을 꺼낸다.
"... 나는 있잖아, 준아."
"잠, 잠만...!"
준은 다급히 날 막는다. 가지 말라고 바짓가랑이 붙잡는 아이처럼.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다 아는 것처럼.
"미안해, 헤어지자곤... 하지 마."
준은 내 생각보다도 민감한 사람이었으니까. 울 것 같은 준의 표정을 천천히 바라보지 마음 한 구석이 욱신거리듯 아파왔다. 준의 그 더듬거리는 말처럼, 내 호흡도 자꾸 멈춘다.
"내가 미, 미안해. 근데 난... 아직 헤, 어지진 못하겠어."
"준아."
"미안해, 내가 널 도울 수 있는 게..."
나는 고개를 젓는다. 대답을 못 하던 그날관 다르다. 오래 고민한 대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