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부르다
바닷가를 걸었다. 끝없는 바다, 그리고 끝없는 모래. 물결치는 파도를 보며 조금 더 가까이 닿고 싶었고. 그 끝에 갈수록 질척이는 진흙들에 가끔 화가 났지만. 그럼에도 바다에 닿고 싶었다. 바다는 아무리 멀리 본대도 끝이 없어 보였기에. 끝을 두려워하는 내겐 바다가 좋은 대답이 되었다.
파도에 다가가는 걸음은 푹, 푹 발이 빠지는 것이 돌아가는 길이 쉽지 않으리란 판단을 안겼고. 겁이 나 뒤돌아 뛰어간대도 질척이는 진흙에 모래 따위가 섞여 나를 더 불쾌히 만들 뿐이다. 그럼에도 진흙에 끝까지 다가가는 것은, 파도에 닿고 싶단 일념뿐은 아니었다. 가볍디 가벼운 모래는 되려 털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니까.
신발 밑창에 천천히 깔리고, 바지자락 끝에 가벼이 매달린 그것은 털어내기도 어려운 것이었고. 이내 한참이 지난 뒤에도 오래 매달려 곳곳에도 발견되는 미련 같은 것이었다. 미련 따위는 가벼이 털어내기 어렵지만, 질척이게 붙잡는 진흙은 탁탁 바닥에 던져버리면 그만이니까.
삶에서 날 붙잡는 것들보다야 가볍게 스쳐 지나는 것이 많다. 파도가 치는 바다를 걷는 것은 그런 것들의 회상이었고. 모래는 딱 미련만을 남겼지만, 파도 한 번엔 모두 휩쓸려버릴 가벼움이었고. 파도, 그래 바다에 젖기 두려운 나였기에. 늘 파도를 앞에 두고 첨벙거리기를 주저했다. 파도에 휩쓸리면 도망칠 수도 없잖아. 그런 판단을 하고 나면 나는 쓸쓸히 바다를 돌아서 모래를 묻혔던 것이고. 이내 끝까지 따라붙는 미련에 고통스러워했을 뿐이다.
"나는 바다가 싫다."
줄곧 바다를 보던 내가 바다가 두려운 것은 우스운 일이었고. 나는 다시금 모래에 주저앉는다. 이렇게 주저앉아버리면 털어낼 미련은 한 무더기일 텐데도. 결국 주저앉고선 바다를 부르는 것이다.
"털리지도 않아. 애초에 질척거리지도 않는데."
모래는 단단히 뭉치고. 파도는 그저 머무는 거지. 그래 그런 생각을 했던 거다. 그때쯤엔 바다가 죽도록 싫었고. 질척이는 진흙 따위에 화가 났던 것이고. 가볍디 가벼우면서 울적한 이 모래에 속이 상했던 것이다.
파도에 닿은 모래는 진흙이 된다. 나는 그것을 명명하려 하지 않는다. 파도엔 그런 가벼운 마음 따위 휩쓸려나갈 것이니까. 홀로 불러낸 파도 따위 질척이게 될지라도. 무겁게 내 손에 남진 않을 테니까.
"그래, 난 파도에 닿을 용기가 없다."
파도가 될 수 없고. 진흙조차 될 수 없고. 뭉쳐내는 것은 그저 모래. 내일은 바다를 떠날 것이다.
그래, 모레는... 이 진흙을 떠날 것이고. 나는 그렇게 파도를 부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