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
"개꿀빠네? 연차 찼다고 앉아서 쉬고."
"네?"
"여가 너 말고 꿀 빠는 사람이 어디에 있다고 모른 척이야. 가만 보면 너도 참..."
"일어나 있을게요."
"그냥 앉아서 쉬어. 나만 나쁜 사람 되니까."
정아의 조롱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의자라고 해봐야 우유박스를 엎어서 쌓아둔 것에 방석을 깔아 둔 것뿐이고. 방석은 얇디얇아서 엉덩이가 아파오는 자리였다. 10분 넘게 앉아있던 것도 아니었고. 고작 1분을 앉아있었던 것이 전부인데. 나는 아니에요, 아니에요를 반복하며 일어나 헤실헤실 웃을 뿐이고. 그 공간은 순식간에 내게 불편한 자리가 된다.
'이래서야 5층이랑 다를 것도 없다.'
5층에는 의자조차 없었다. 지금 3층은 부실한 의자가 있지만, 결국 앉질 못한다. 뭐가 더 나은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저 또 다리를 두들길 뿐이다. 다행이라면 바리스타는 업무가 바빠서 이렇게 앉을 시간은 거의 없었고. 하루 종일 바쁘게 돌아야 하기 때문에 다리가 아플 틈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다리가 무너지는 순간은, 퇴근 직후 버스에 앉았을 때. 그때는 다리가 무너질 듯 천근만근 하고. 다리가 퉁퉁 부어있었다.
때마침 손님이 다가오시고 나는 주문을 받는다.
"커피, 티 어떤 걸로 드릴까요? 시원한 거, 따뜻한 거 둘 다 있어요!"
목소리 톤을 높이고 아무렇지 않은 척 일을 한다. 문득 언니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무시받지 않는 삶이 무엇일까. 돈을 벌면 무시받지 않는 걸까. 사실 어쩌면 돈을 벌면서 무시를 받고 있는 것도 같은데. 이게 나를 지키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었고. 하루 종일 커피를 내리면서도 물조차 한 모금 감히 받지 못한 탓이었다.
'목이 타네.'
계속 언니 생각이 꼬리를 문다. 언니는 대학교를 다니는 내내 용돈벌이를 스스로 해왔고. 주말은 물론이고 학교를 마친 뒤에도 일을 병행하며 나까지 챙겨주었다. 나는 이렇게 하루 종일 일을 해도 겨우 내 용돈벌이를 하는 것이 다인데. 그마저도 아끼고 아껴 지내는 것인데.
'언니는, 어떻게 버틴 걸까...'
일이 적응된 만큼, 지친 탓이라고 생각했다. 일을 하나하나 마음에 담지 않고. 바로바로 처리해 버리는 탓. 나를 잃어버리고 알바생의 나만 남아버린 탓이라고. 아니 어쩌면 내 스스로를 온전히 놓아버리지 못한 탓이라고.
문득 우유상자를 뒤집어 쌓아 둔 의자가 밉다. 다리가 아파도 겨우 걸터앉을 수 없는 의자가. 날은 풀리고만 있는데, 이 굳은 다리는 녹을 기미가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