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
'오늘은 일이 끝나질 않네...'
정아의 지시 탓에 앉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오늘은 특히나 쉴 틈 없이 바쁜 날이었다. 웨딩도 가득 찼고. 단체 예약 손님도 많은 탓에 정신이 없었으니까.
사실 웨딩이 많은 것보단, 어린 손님의 수가 웨딩홀의 업무 난이도를 정하곤 했다. 티, 그리고 아이스크림, 가벼운 식기 정리. 어린이전용 수저들은 더 꼼꼼하게 열탕 소독을 한 뒤 닦아야 했고. 어린 손님들은 아이스크림을 욕심껏 받아간 뒤 다 남기기 일쑤라 그것이 걸리는 날에는 내가 혼나는 경우도 잦았으니까.
특히나 아이스크림을 채우는 것은 가장 고된 일이었는데. 꽝꽝 언 아이스크림을 통에서 꺼내 반으로 가르고. 세팅되어 있는 통에 선입선출을 시키며, 모양을 예쁘게 잡는 일은 힘이 무척 많이 드는 일이었다. 어린 손님이 자주 오는 날에는 그런 아이스크림을 수십 통을 채워야 했고. 집에 가는 퇴근길엔 심한 근육통을 호소해야만 했다.
'오늘도 어린이들이 많으니까... 아이스크림을 미리 채워둬야겠다.'
바쁠 것을 예상하고, 발걸음을 옮겨 아이스크림 여섯 개를 챙기러 냉동실로 향한다. 부장님은 카트를 끌면 되는데 무식하게도 옮긴다고 한소리를 하시겠지만. 바쁜 와중에 카트까지 끌게 되면, 업무는 밀리기 마련이다. 언제 또 새로운 업무가 배정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바리스타 일은 제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지만, 늘 홀의 일보단 쉽다며 천대받기 일쑤였고. 홀이 바쁜 날에는 뛰어나가 지원을 서슴지 않아야만 했다. 그럼에도, 바리스타 일은 늘 완벽히 마쳐야만 했고. 그것이 어쩌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지만, 한 번도 불만을 제기한 적은 없었다.
차가운 아이스크림은 얇은 와이셔츠를 타고 팔에 전해져 한 기를 안긴다. 통에 닿은 손가락은 쉽게 얼어붙고 무감각해진다. 무거운 무게감에 팔이 덜덜 떨리고, 손은 시리다. 여섯 개를 쌓아 올리니 시야가 잘 보이지 않고. 바쁜 탓에 온몸은 천근만근 무겁기만 하다.
'괜찮아. 금방 하면 돼.'
스스로를 다독이듯 채찍질을 하고. 괜찮다는 말을 전한다. 겨우 옮겨낸 아이스크림 탓에, 나는 겨우 팔을 두어 번 퉁퉁 두들긴다.
내가 아이스크림을 정리하려 정리기구를 손에 잡는 순간, 덜컥 굉음이 들리며 시야가 가득 찬다. 빈정거리는 말투, 그리고 큰 통에 가득 찬 수저들.
"한가하지? 이것도 하라고."
"네? 이게......"
"수저 닦을 줄 알 거 아니야. 닦으라고."
정아는 어김없이 새로운 업무를 건네온다.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끼린 업무지시를 하지 말라던 부장님은 말 따위는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바리 일이야 눈 감고도 하는 걸... 못 한다고 할 건 아니지?"
"... 이건 홀 업무 아닌가요? 저도 지금 업무가 밀려있는데. 오늘 어린이 손님이 많이 와서......"
"야, 말 대답하지 마. 니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거야? 디저트 식기 닦는 김에 닦으면 되잖아, 진짜. 기어오르네 이게?"
"바로는 못 할 것 같아서요. 급하신 거면......'
"니가 하라고. 내가 친히, 가져왔잖아."
디저트를 제공할 때 건네는 수저, 어린이 수저를 관리하는 바리스타 공간에서. 홀의 수저와 포크 따위를 건네오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다. 그 마저도 세척실에서 제대로 씻겨오지도 않은 더러운 수저. 저것을 하나씩 다 씻기고, 열탕을 하려면 한참이 걸릴 것이었고. 나는 정아를 빤히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대답, 안 해?"
알겠다고, 해내겠다고 하면 되는 일인데. 나는 쉽사리 대답이 나오질 않는다. 이걸 수긍하는 날엔 더 많은 업무가 주어질 테니까. 나는 참아내야만 하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