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
'조금 피곤한가.'
의미 없이 늘어난 전화번호부의 숫자들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대학교 친구는 비즈니스라는 말처럼 의미 없는 친구를 사귄 기분이 들었고. 친해진다고 하더라도 가까이 지낼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그나마 같은 지역에 산다는 것에 위안이 되었는데. 대학교는 그마저도 제각기 다른 지역에서 오니 공통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집이 잘 살고, 못 살고를 떠나서 알바를 아예 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와의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어울리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보다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가까웠다.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러 대학교에 오지만. 결국은 그런 사실 대신, 다른 것들이 선명히 다가옴이 느껴졌다.
생일이 미처 지나지 않아 난 청소년 요금을 내고 버스에 올라탔고. 내릴 땐 동일한 소리로 하차태그를 해낸다. 어른이 되었음에도 아직 청소년 요금을 내는 것이 부끄러워졌고. 대학교 친구들과는 함께 버스를 타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버린 순간이었다.
-
"저 다녀왔어요."
집 문을 열고 인사를 건넨다고 해도 돌아오는 답변은 없다. 맞벌이하시는 부모님, 그리고 언니까지 집안 구성원들은 평일에 집에 머무는 법이 없으니까. 학교에 다녀온 무용담을 풀고 싶은 것은 아니었고, 너무 힘드니 안아달라고 말할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괜스레 기운이 빠져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소파에 기대어 눕고 말았다.
핸드폰을 아무리 스크롤해도 연락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졸업한 마당에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연락해 봐야 만날 수가 없을 것이고. 학교를 마친 뒤이니 대학교 친구들에겐 더더욱 연락할 수가 없었고. 대학교에서 느낀 이 마음을 준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어린아이 같은 생각임을 아는데도 무의식 중에 메신저에 들어가 내 프로필 사진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어린아이 티를 벗지도 못한 것 같아.'
졸업 때 남긴 사진들을 바라보다, 고등학생의 내 사진. 그리고 준과 함께 찍은 사진들에 이어서 손이 움직인다. 나는 무표정하게 그것들을 바라보다 가슴이 답답해져서 폰을 끄곤 손으로 얼굴 가리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충동적으로 프로필을 내리고, 화면을 덮는다. 연락할 곳이 없는데, 연락받을 곳은 어디에 있기에. 반짝거리는 폰의 불빛이 거슬리는 것도 같았고. 이방인이 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누가 연락을..."
깜깜한 폰에 들어온 것은 빛이다. 누군가의 작은 관심이자, 내가 바라던 연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