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신발을 사줘

단편 소설

by 유월

"이번 선물은... 신발이 좋겠어"


그래 난 신발도 한 켤레의 신발만을 신는데. 신발 선물이라니 스스로 생각해도 조금 어이없는 답변이었으려나. 나는 늘 한 켤레의 신발을 품고 해질 때까지 그것을 붙들고 있었으니까.

너와의 연애는 친숙하고 편안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길만 들이면 그럭저럭 신을만한 신발이라고. 처음이야 발가락이 구겨지고 아파지긴 하더라도 분명 나에게 적당히 맞는 신발이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의 내가 그랬듯 해질 때까지 신고 나면 자연스레 내 애정이 담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디든 이 신발을 신고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신발이 되어주리란 기대는 없어도 불편한 신발이 되리란 생각 역시 하지 않았다.

돌부리에 계속 걸려 넘어지는 요즘. 너는 나에게 어떤 신발이었는가를 떠올려보자면. 너는 신발도 아니었던가. 너는 어쩌면 돌부리가 되었구나 생각이 들었으니 내 애정은 이미 밑창 떨어진 신발이었는지. 아니면 옥죄어 벗고 싶던, 사이즈조차 맞지 않는 신발이었는지. 너와 만남은 어쩌면 끊임없이 헤맬 공간에서 길잡이가 되어주지 않을까 떠올렸는데. 이 신발은 날 항상 도망치고 싶게 만들었다.

그런 이유로 네게 신발을 받고 싶었나 보다. 나는 고작 신발 한 켤레로도 만족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리 나쁘지 않은 신발이라면 좀 더 길들여보고 싶기도 하였는데. 너는 이미 떠난 신발 그 존재 이상으로 가지 못하나 보다.
나는 도망치고 싶다. 너로 인해 이제 그 어떤 것도 담고 싶지가 않아 졌다. 신발을 사주면 애인이 도망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런 우스운 핑계라도 대고 너에게 도망치고 싶었나 보다. 너의 탓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 너의 선물 탓이라고 우기는 말 같지도 않은 핑계를 떠올리면서.

이번 선물은 신발이 좋겠다. 너의 아쉬움일랑 신발 신고 멀리 떠나보내게. 더 길들이지 못한 나를 책망하며 새로운 신발을 길들일 수 있도록. 돌부리를 쉬이 넘어갈 수 있도록. 나의 끈기 없음을 탓하며 도망가고 싶다.

"난 이제 홀로 걷고 싶어."

"왜 혼자 도망치려 해... 왜 나랑 이야기조차 하지 않으려고 해."

"더 들을 이야기조차 우리 사이에 남지 않았으니까. 나는 이제 옥죄이는 신발이 불필요하거든. 나는 맨발이라도 그냥 홀로 돌부리를 넘고 싶어."

너무 단호했을까. 나의 말이 내게도 그냥 넘길 말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도 나는 결국 새 신을 신고 도망갈 테지. 그냥 너에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너로 인해 나는 도망치고 싶어 졌다고. 불필요한 신발을 굳이 신고 싶지 않아 졌다고.

"그래서 신발을 받고 싶었어. 네가 나의 신발을 벗긴 것이라고. 너를 탓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 선물 때문에 나는 떠난 것이라고 그런 말이라도 하고 싶었을지도... 이게 우리의 마지막 걸음이야."

너를 등지고 걷는 길은, 그래 맨발로 걷는 길은 조금 아플지도 모른다. 너는 나를 책망하고 괴로워할지 모른다. 다만 나는 그 길이 너무도 가벼울 것 같아서. 맨발로 다니고 덧나더라도 길을 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홀로 떠날 그 길에 수많은 돌부리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줌을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