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안긴 그날
20살, 여름이 지나고 피부가 뒤집혔다. 그전에도 잡티 없이 맑은 피부 이런 것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턱에만 나던 여드름이 얼굴 전체에 번져 붉어지기 시작했다. 20살 되고 상반기에는 피부가 점점 좋아지던 걸 생각하면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바꾼 매트한 파운데이션이 잘 맞지 않았나. 추측을 해보기도 했지만.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겨울이 되자 내 얼굴은 깨끗한 부분이라곤 하나 없는 흉측한 피부가 되었고. 화장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못난 얼굴이 되었다.
당시는 코로나라 마스크를 쓰고 다닐 때는 그나마 얼굴을 치켜세우는 것에 두려움이 없었으나. 밥을 먹을 때면 고개를 푹 숙이고 먹기 일쑤였다. 남자친구를 사귀어도 내 피부를 보고 혐오스러워하면 어쩌지 하고 걱정하는 나날이었다. 동기들과 사진을 찍어도 항상 마스크를 고집했고. 거울 앞에 서면 나 자신이 혐오스러워서 오래 볼 수가 없었다. 돈을 들여 비싼 연고를 사고, 관리 용품을 사도 너무나도 더딘 호전에 매일 잠이 오지 않았다.
관리한 지 벌써 1년이 넘어가는 지금. 아직도 여드름 흉터와 이런저런 걸로 아직도 흉측한 피부지만. 1년 전과 비교할 때는 많이 나아져 화장으로 조금은 가려지는 수준이 되었다. 여전히 거울 속 나는 흉측했지만. 나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던 것 같다.
5년 만에 친가 친척들을 만났다. 장소가 할아버지 장례식이었기 때문에 내 차림새는 수수하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피부 화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잡티를 열심히 가리고 간 것이었고. 나름 잘 가렸다고 생각한 날이었기에. 수수한 내 얼굴과 달리 피부에는 그리 불안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형식적으로 오랜만이다. 이런 일로 봐서 그렇지만. 많이 예뻐진 것 같다는 인사말들이 감쌌다. 나도 적당히 호응하고 웃어넘기고 있었다. 그런 내게 돌부리처럼 날 넘어트린 건. 아마도 나의 피부 이야기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한 마디로 시작했다. "아이고 막내는 피부가 왜 그런데?", "아이고 얼굴에 성이 잔뜩 났네... 스트레스받은 건가? 얼굴에 이게 뭐야.". "얼굴에 난 건 여드름이야? 아이고 어떡해.", "피부만 아니면 더 예뻤을 텐데. 너무 아쉽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감당하기 힘든 한마디들이 되어 나를 넘어트리기 바빴다. 5년 만에 만난 친척들과는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다. 사실 가까운 사이래도 너무 무례하게 들린 말이었다. 웃어넘기고 자리를 비키기 바빴지만. 다들 내 피부만 바라보는지 말들이 끊이지 않았다. 말이 나를 따라오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 순간 한계점을 도달한 것이 오후 10시쯔음. 이미 받을 대로 받은 상처 속 파고든 한마디였다. "그렇게 안 보이는데 얘가 막내라네. 얼굴 큰 애가 막내. 피부가 저게 뭔지. 피부만 아니면 훨씬 예쁠 텐데." 사실 그전의 말들과 크게 다른 말이 아니었는데. 내가 표정이 관리가 되지 않을 듯해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음에도 말은 또 나를 따라오기 바빴다. 뭔가 무너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껴서. 무례한 행동임을 알면서도 장례식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무작정 화장실로 향했다. 한 달째 낫지 않는 감기로 기침을 연신 내뱉었다. 심하게 나온 기침에 눈물이 났다. 그러더니 갑자기 주저앉아 울음이 터져 나왔다. 눈물을 닦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피부 화장이 더 무너지면 흉측한 피부가 보일 텐데. 울면서도 이런 생각을 하다니 정말 최악이구나.' 화장실 안에는 거울이 없음에도 내 얼굴이 그려졌다. 거뭇하게 남은 여드름 자국, 새로 생긴 곯아터진 여드름. 화장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내 피부가. 1년간의 관리가 무색하게 남들에게는 그저 피부 더러운 애로 보이는 게 아닌지. 그동안 다른 사람들도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은 아닌지. 여러 생각에 잠식되어 눈물이 났다. 하기야 나도 내 얼굴 보면 혐오스럽다는 감정마저 느꼈는데 그들도 그랬겠지. 하는 생각에 밖을 나갈 수가 없었다. '그렇구나. 나는 그냥 혐오스러운 사람으로 보였겠구나.' 무너진 피부로 나갈 자신이 없어서 그렇게 펑펑 울다 열감을 낮추러 밖으로 무작정 뛰어나갔다. 눈물이 멈추진 않았다.
조금 지나자 언니가 날 데리러 왔고. 언니는 날 안아주며 울지 말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방금 이야기한 사람은 자리를 비웠다고. 돌아가자고 이야기해 주었고. 나는 품에 안겨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한참을 울던 나는. 다가오는 아빠의 그림자를 보고는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들었다. 가부장적이고, 예의를 중시하는 아빠에게 내 행동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성인이 되고는 아빠와 대화다운 대화도 나눠본 적이 없었다. 내 피부 보고 하신 이야기를 듣고는 아예 얼굴을 마주하질 않았다. 애초에 멀어질 대로 멀어진 사이였고. 단 한 줌의 애정이 없는 사이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혼이 날 것을 알았다.
아빠는 다가와서 내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내가 다 속상했겠다. 신경 못 써줘서 미안하다." 그러고는 나를 안아주었다. 몇 년 만인지 생각할 틈도 없이 그렇게. 그리 차가운 안아줌이 있던가. 내가 비참했던 건 그 순간이 무척이나 마음이 놓여서. 혼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냥 마음이 아파서 다시금 눈물이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혐오하던 대상에게 받는 위로가 퍽이나 위로가 되었다는 게 나를 복잡하게 만들던 것인지.
그 뒤로 아빠와 대화를 많이 하진 않았다. 다만 몇 년간 목소리도 기억 안 날 정도로 멈춘 대화가 한두 마디 덧붙었다는 것 정도. 아빠가 여전히 너무나도 밉지만. 그날의 감정을 미워할 수 없다는 것이 슬프고도, 혼란한 마음이 든다. 그 위로는 원하되, 원치 않던 것. 그 감정 역시 원하되. 원치 않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