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함과 간절함

시를 좋아하는 이유

by 유월

어릴 때는 무작정 두꺼운 책들을 넘겼다. 소설, 세계 명작 두꺼운 책이라면 그저 넘겼다. 멋있어 보이기도 했고. 두꺼운 책이라면 뭔가 많이 들어있으리라는 착각. 그 시절 나는 두꺼운 책장을 넘겼다.

두꺼운 장편 소설을 좋아하던 나였기에 뭐든지 길게 말하는 걸 좋아했다. 아프다는 말도 그저 한마디로 그치지 않았다. 그때는 그게 나의 아픔을 정당하게 표출하는 것이라고 떠올리기도 했다. 어린 나는 그저 표현해 내는 것. 아니 배설해 내는 것에 그쳤다. 아프다고 소리 내어 울고 괴롭다고 투덜거리기 바빴다. 정말 아파 열이 펄펄 나던 날에 나는 여느 때처럼 떼를 쓰듯 울었고. 결국 병원에 가지 못했다. '아프다' 이 말 한마디를 내뱉은 언니는 병원에 갔지만. 나는 집에서 우는 것 외에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나중에 엄마가 왜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되물어보셨지만. 당시 나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왜 간절히 호소한 내가 아닌 언니가 병원에 가야만 했는지를.
물론 중학교 동아리를 바꾸러 선생님 앞에 앉았던 그날. 나 대신 해명해 주던 친구의 장황한 말이 아닌. '괴로워서'라는 나의 말에 수긍하고 용인해 주신 선생님. 미안하다는 장문의 사과 대신 나를 안던 그를 거쳐서 나는 장황한 설명만이 간절함을 표하는 것이 아님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간혹 과거의 내가 억울해지기도 하였지만

시에 빠진 것은 그래서였다. 간결함, 짧은데도 묵직이 때리는 그 말이. 소설보다 시에 매료되게 하였고. 길게 읽어내지 않아도 깊숙이 들어오는 시가. 얇은 데도 마음을 묵직이 표현해 내는 시가. 큰 기복 없이 덤덤히 감정을 표현해 내는 시가 참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렇기에 난 더 이상 장황히 내 간절함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 간결히 간절함을 표현해 내는 것에 빠지기도 하였다.
시를 좋아하게 되고 많은 것이 좋아졌지만. 문제가 있다면 원인은 나의 무심함이었다. 대충 요약해 정리한 나의 말에 때로 상처받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답답해지기도 하였다. 다만 이 문제는 나의 무심함이었다. 하기야 모두가 시를 좋아하는 것이 아닌데. 간결히 말한다고 나의 의도가 정확히 전달되리란 것은 나의 오만함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게 참 어려운 일로 남았던 듯싶었다.


최근에 장황한 연락을 받았다. 구구절절 적힌 이야기. 멋대로 요약해 내기 좋아하는 나는 단박에 의도를 파악하고 웃어보았지만. 그 속에 간절함을 느꼈다. 그리움, 미안함 그 복잡한 정서가 어지럽게 나열된 글에서 정리된 하나의 문장은 '보고 싶다' 이 정도 문장이려니 추측해 내었다. 감정을 표현해 내지 못해서인지. 자신도 본인의 마음을 모르는 것인지 답을 내리기 어려웠지만.

답은 없었다. 그의 연락에서가 아니라. 장황함도, 간결함도 간절함을 홀로 온전히 표현해 낼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만나 꾸짖듯 길게 이야기할 필요 없다고 하였다만.)
다만 어릴 적 나의 투정에 반응 없던 부모님과 달리 울며 괴로워서라고 답한 나의 말에 귀 기울여주신 선생님처럼. 표현해 내는 것보다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했다. 무심함이 아닌 따스함이. 그의 장황한 연락을 이해해 내려던 나의 마음처럼.

오늘의 글을 장황히 정리하며 역시 시가 더 매력적이구나 하는 우스갯소리를 뱉는다. 짧게 정리해 내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구나 깨닫기도 한다. 다만 오늘의 글은 왜인지 다시 솔직해진 기분이라. 글에 대한 내 간절함이 간결하지 않게 남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