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나를 위해 사랑이라 속이곤 했다
스무 살의 상담 후엔 그저 '의지하는 삶'을 살았다.
내게 질려 지쳐 떠난 애인의 빈자리를 느끼기 전까지는 그랬다.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전혀 의지하지 않던 나는 애인과 헤어진 뒤 중심을 못 잡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아짐은 전혀 없었다. 그저 의지할 곳만을 찾고 또 찾았다. 좋은 사람도 아니어도 괜찮았다. 그냥 어떤 사람이라도 내 곁에 있어주길 바랐다. 그러기에 쉽게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상처받을까 맘을 주지 않았고. 나를 조금이라도 지치게 하면 그를 바로 놓아버렸다. 쉽게 정서적 어려움을 고백하고 이해하기 어려우면 "포기해."라 하며 강요하곤 했다. 그렇게 상처 주고, 또 수많은 이별을 남기며 나는 나를 갉아먹었다.
그렇게 채운 사랑이 날 가득 채울 순 없었다. 애인이 날 사랑하냐 물으면 조소를 흘렸다.
"나 자신도 안 사랑하는데 무슨 사랑. 그냥 좋아하는 거지."
애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그저 의지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그런 씁쓸한 사실만을 간직해 마지못했다.
"너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이런 말들 속에서 나를 사랑이란 것에 의문을 품곤 했다. 사랑이 뭐길래. "그냥 옆에 가만히 있어주면 되는 것을, 왜 이리 날 지치게 하지?" 하며 그들을 원망했다. 나도 그들을 사랑하지 않았으면서 그들의 사랑을 탓하고 탓했다. 사랑의 이름은 이런 게 아니었을 텐데...
"비겁하다, 비겁해. 내가 이상형이라고 할 때는 언제고. 저리 쉽게 포기해 버리다니" 공허 역시 사랑의 다른 이름이 되어줄 수 없을 텐데도. 공허로 사랑을 가득 채웠다. 정작 사랑에 있어서 비겁한 건 나였는데. 그들의 탓이라 넘겨버리니 더 못난 사람이 되어가기도 했다.
그 쯤 되니 나는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다. 그리 특별하지도 않은 감정들을 사랑이라 속이고 상대에게 상처를 줬으니 벌을 받은 것도 같았다. 나도 날 사랑하지 않으면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도 우습게 느껴졌다.
이 정도로 망가지니 스스로 강해지지 못하면 아무 의미 없단 생각에 더 무기력에 빠졌다. 나는 그 누구를 사 랑할수도, 의지할 수도 없으리라 생각했다. 준 상처가 많으니 내게 상처만 남을 거라 겁이 났다.
그때쯤, 내가 수강하던 과목에서 '상담'을 과제로 받게 된 것은 다행이었다. 나는 혼자 상담소에 갈 자신도 없었으니까.
다만 남들이 5차례로 끝날 상담을 난 놓지 못하고 계속 붙들고 있어야 했다는 절망감. 결국 누군가에게 또 의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나를 따라왔다.
무력함 끝, 씁쓸한 마음이 다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