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해 줄 사람
나는 상담실 문을 왜 계속 두드려야 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나 자신을 외면하고, 사랑히지 않던 비겁한 습관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상담 동아리에 들어갔던 나는. 상담을 배운다는 명목하에 상담을 시작했다. 연습이었던 상담이 실제 상담이 되어버린 것은 조금 우스운 일이 되었지만... 그 덕에 나는 내 감정에 서서히 다가가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상담을 진행하며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있냐는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진행하면 어떠냔 질문에도 "선생님은요?"하고 되묻기 바빴다. 선생님은 그때 슬픈 표정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셨다.
"남 눈치를 많이 보면, 자신을 아끼는 방법을 잊어버려."
자신을 아끼는 법. 타인들이 내게 '배려심이 좋다, 착하다' 얘기하던 것을 떠올려보았다. 상담에서는 이것이 그저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문제요소' 이상이 되어주지 못했다. '착하다'라는 말, 그리고 '자신을 아끼지 않는다' 이 괴리감이 나를 더 절망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착한 척만 하며, 나를 잃어버리고 있었나 조바심이 들기도 했다. 상담은 10회기를 지나 내 문제를 인지한 것에서 끝났지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라는 단어가 뼈아프게 마음에 남았다.
당시 연애를 쉬지 않고 하고 있던 나는 연인에게 의지했고. 연인과 싸우는 날이면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 고등학생 때부터 성인이 되어서도 만났던 연인과 헤어진 그 순간에는 일주일간 슬픔에 잠겨 생활이 어렵기도 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겐,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고작 애인 뿐이었기에. 애인의 상실은, 날 사랑해 주던 이의 존재의 소멸이었다. 날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나는 사랑할 구석이 있는 사람인가? 이러한 의문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스무 살의 상담은, 나를 사랑해 주는 이가 없었기에 상담을 받게 되었다. 오래된 연인과의 이별 때문이 아니라.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서. 내가 내일 떠난 대도 걱정해 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어찌 보면 비악인데도 나는 이러한 사실이 진리라고 감히 믿었다. 여러 호소문제 중에서도 이러한 사실이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때의 내가 나를 조금 더 사랑하는 방법을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결코 그러지 못했다. 나 스스로를 사랑하기보다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을 찾아내기 바빴다. 결국 애인을 만들고 그에게 의지하는 삶을 택했다. 그 쉬운 회피방식으로 모두가 내게 '다시 밝아진 것 같다'라고 이야기를 하곤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본다면 나는 조금도 나아지지 못한 채, 한심하게 하루하루를 넘겼던 것 같다. 결국, 난 나를 사랑하지 못했기에. 연인에게 의지한 그 순간에서도 상처주기 바빴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음을 증명하는 것과 같았다. 하기야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역설 아닌가. 그렇기에 연애 중에도 그 사랑을 의심하고, 더 큰 사랑을 바라고. 상대방을 지치게 만들었다. 무작정 내 정서적 상태를 고백하고. 네가 선택한 일이니 견디라고 성내기 바빴다. 결국 또 그런 과정에서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 아닌, 나를 싫어할 방법을 찾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나는 누군가를 사랑할 자격조차 없단 비참한 생각들이 날 채워갔다.
나는 왜 누구도 사랑하지 못할까. 왜 나는 나의 작은 구석 하나도 사랑할 수 없을까. 이 의문 끝에는 결국 내 단점만을 나열하며. 누군가를 나를 좋게 이야기해 준대도 단호히 고개를 젓기만. 사랑은, 혼자서는 못하는 것인가 하는 한탄만을 내뱉으며 사랑한다는 곳이 무엇인지 오래 고민을 해야만 했다.
나는 결국, 그리고 결코 나를 사랑하지 못하리란 생각이 나를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