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흩날리는

은행잎의 이야기

by 유월

펜을 들었다, 미처 전하지 못한 마지막을 전하려 그녀는 펜을 들었다.

화창한 날이었나 그와 첫 만나는 날을 기억했다. 느즈막한 저녁, 가로등 밑.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떠올린 그. 그런 그가 머리를 넘길때에 조금 설레였던 순간. 처음으로 두 눈이 맞닿은 순간, 조금 두근거리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던 그날.
좋은 것을 보고 생각나고, 누구를 만난다하면 질투가 나고. 이런 건 사랑이려나 자연히 떠올렸다. 그녀는, 그는 제법 사랑을 담은 사람으로 기억했다.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했던 가, 한국은 그리 좁은데. 그 조금의 거리에 왜 시차가 생기는지. 물론, 그들의 사랑은 닿지 못했다. 지금 와서 그녀가 떠올려보면 그다지 맞는 것도 없었는데. 맞지 않아서 불안정한 그런 끌림이 두 사이에 남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끝내 그와는 딱 그정도 사이였다 자책하기도 했지만 시린 마음은 딱 가을의 감성이려나 떠올렸다. 가을의 시린 바람, 그와 만나기 위해 준비했던 여름 옷. 그녀는 올 가을맞이는 늦겠구나 한탄을 내뱉었다.
홀로 붉게 물든 단풍을 바라보자면 어쩌면 서로에게 저리 상처를 주어 붉은 멍, 갈색멍 피어냈겠지 떠올렸다. 시들어버릴 낙엽, 어쩌면 또 새로운 시작을 알려줄 겨울이 다가올테지만 그녀는 미처 맺지 못한 씨앗이 아팠다. 우리가 봄에 만났다면 꽃을 틔워냈을까. 이리도 차가운 가을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따스해 잎사귀 돋아냈을까 떠올렸다. 어쩌면 겨울이었다면 새로운 시작을 기약했겠지 하는 생각들이었다. 또 의미없는 고요였지만 그녀는 이것이 가을이구나 생각을 갈무리했다.

펜을 든 그녀는 미쳐 전하지 못한 말을 담는다. 사실 이번 크리스마스가 된다면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었음을 생각했다. 사실 저번에도 용기를 내 고백을 전할까 떠올리기도 했다. 결국 용기가 없었지 자책하고 말았지만.

"가을이네, 넌 더위를 많이 타니까 시원하겠다."

편지를 끄적이다 내뱉는 혼잣말. 그는 안을때 열기가 확 느껴지는 사람이었는데. 추위를 잘 타는 나는 땀조차 잘 나지 않는데. 너는 그랬었지. 별 것도 아닌 일이 생각이 난다. 겨울을 같이 보냈다면 그가 추위를 잘 타는 날 안아줬을까 생각을 했다.

"우리 마지막 인사는 어땠더라..."

펜을 편지 밑바닥에 마구 비벼댄다. 신경질날 질문은 아닌데 그저 머리가 아파서. 좋지 않은 기억이었나 그래서 지워버렸나. 닿지 않아서 미화되어 버렸나 혼자 웃어넘겼다. 동그랗게 그려대는 낙서, 결국 편지는 완성하지 못했지만.

창문을 바라본다. 가을이 청명하고 예쁘네 혼자 빙긋 웃음을 지어낸다. 그러곤 그녀는 옷을 갈아입는다. 아무래도 단단하게 입어야겠지. 그리 추운 날씨가 아닌데도 목도리를 두른다. 단추를 끝까지 잠군다. 추위를 잘 타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녀는 노랑 은행잎을 팔랑팔랑 흔들어댄다. 참 다행이지 벚꽃이었다면 훨훨 날아가 앉았을텐데, 단풍이라 이리 흔들수 있는 거야. 그녀는 파릇한 잎을 보며 조금 미소를 지어보인다. 아직 잎이 이리도 청명하구나 하는 그런 생각들이 그녀를 뒤따른다.

언젠간 낙엽이 시들겠지, 이 계절이 끝나듯 내 사랑도 끝이 나겠지. 사실 널 별로 좋아하진 않았어.

그녀는 편지를 낙엽에 적을 것을 후회했다. 팔랑이는 은행잎을 손에 쥐고, 한 손은 목도리를 꽉 감싸며 가을 바람을 맞는다. 강하게 부는 바람, 흩날리는 머리카락, 요동치는 마음들.
걸음 끝, 그녀는 이내 은행잎을 탁 던져낸다. 은행잎은 날아갔는지, 가을 바람은 대답없이 그저 정취, 그리고 정지.

널 만나 좋았던 그 날, 그리고 너를 보지 않아도 여전히 좋은 이 가을 밤.